HIFICLUB, High-end Internet

오랫동안 오디오 평론 작업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사연으로 늘어나는 것이 하나 있다. 각종 케이블이 바로 그것인데, 현재 필자의 작업실에는 15종 이상의 인터커넥트, 스피커 케이블이 있다. 최근에는 컴퓨터 오디오가 세를 얻으면서 디지털 케이블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많은 케이블을 필자가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필자의 메인 시스템에 사용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는 않다. 필자의 메인 시스템용 케이블들은 모두 케이블 타이로 묶어서 고정해놓고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많은 케이블을 필자가 갖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주 간단하다. 기기 테스트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필자가 시청하는 기기의 성향과 스타일을 제대로 살려내기 위하여 적지 않은 케이블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일반 애호가들과 달리 필자의 케이블 컬렉션은 저마다 특성과 개성을 달리하는 다양한 케이블로 구성되어 있다. 
 

기성품도 적지 않지만, 필자의 시스템을 전담하는 엔지니어에게 부탁하여 제작한 케이블도 꽤 된다. 인터커넥트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현재 필자는 기성품으로는 신도 랩, 파이널 랩, 고에츠, 노도스트, HGA, 시너지스틱 리서치, 카잘스 오디오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필자가 특별 주문하여 제작한 인터커넥트만 해도 줄잡아 다섯 종이 넘는다.
 
이 자리에서 필자의 케이블 이야기를 꺼내 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가 자주 꺼내 드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특별한 상황에서 필자가 기대하는 효과를 톡톡히 이끌어 내곤 하는 케이블을 소개하고 싶기 때문이다. 가격대가 수십 만 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고가의 기기에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중급 기종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케이블인데, 노도스트의 블루 헤븐이 바로 그것이다. 
 

간혹 단조로운 음향을 들려준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블루 헤븐은 음향 특성을 우선하는 기기 또는 시스템에 통일성과 긴장감을 불어 넣고, 음향 윤곽과 선율선을 명쾌하게 다듬어 내고자 할 때 필자가 사용하는 케이블이다. 음악 표현의 집중력과 통일성이 부족하고, 선율선과 다이내믹이 명료하게 떠오르지 않는 시스템을 위한 케이블인 것이다. 필자는 예전에 발표한 시청 리포트에서 블루 헤븐 사운드를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블루 헤븐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대목은 선율선과 다이내믹이 절묘한 균형과 긴밀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탄탄한 음향 조형이다. 그리고 적절한 스케일의 음향 무대 속에 더할 수 없이 적절한 규모로 제시되는 악음 또한 군계일학이라고 할 만하다. 마치 액자 속의 풍경화를 보는 느낌을 주는 케이블이 블루 헤븐이다. 이럴 때 템포가 정연해지면서 선율선의 굽이에 탄력이 붙고 색채 표현 또한 아스라한 표정으로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이 케이블이 연출하는, 선도가 대단히 높으면서도 섬세한 고음역은 특필할 만하다.’
 

그러나 자고 일어나면 신제품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는 분야이기 때문일까? 간혹 케이블 추천을 원하는 애호가에게 블루 헤븐 시리즈를 추천하면, 그건 조금 철 지난 제품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없지 않다. 필자로서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일인데, 이럴 때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이른바 명기라고 하는 기기에도 이와 유사한 논리를 들이댈 것인가?
 
최근 블루 헤븐 시리즈에도 신선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한 가지 흥미를 끄는 것은 바람이 아날로그가 아니라 디지털 분야, 특히 컴퓨터 오디오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이 스피드 USB 2.0 시대와 보조를 함께하는 USB 2.0 케이블을 내 놓으면서 블루 헤븐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를 단번에 쇄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블루 헤븐 USB 2.0 케이블에 대한 테스트에 들어가면서 필자가 우려했던 부분이 있다. 아날로그 케이블 시리즈에 디지털 케이블을 추가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노도스트의 입장에서는 최근 차세대 매체로 급부상하고 있는 컴퓨터 오디오에 적절한 대응책을 내 놓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음향에 대한 평가가 확립된 중가 아날로그 케이블 시리즈에 데이터 전송용 USB 케이블을 갖다 놓는 것이 혹시 궁여지책의 산물은 아닐까? 혹시 블루 헤븐 시리즈의 이미지만 흐리는 결과를 빚지 않을까?
 
이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케이블에 담긴 기술 내용에 대한 설명이 기존의 아날로그 케이블과 별로 다른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데이터 전송용 선재로 은도금한 99.9999 OFC 솔리드 코어 2개와 전원용 선재로 20AWG 19 스트랜드 2개를 이중으로 실드하고 있는 이 케이블 또한 노도스트가 자랑하는 독자 기술인 FEP(플루오르로 처리한 에틸렌프로필렌)를 공기를 활용하여 절연하는 ‘마이크로 모노-필라멘트’ 기술을 USB 케이블에도 적용하고 있다. 신호 전송의 관점으로 보면, 이것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지만, 디지털 신호 전송이라면 여기에 뭔가 새로운 기술이 들어가야 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블루 헤븐 시리즈에 속해 있다면, 이 케이블이 들려주는 음향이 전작 아날로그 케이블들과 일정 수준 이상의 연관성과 유사성을 갖고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런데 차분히 생각해보면, 이것은 어느덧 세계 최고의 케이블 전문 회사로 자리 매김한 노도스트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 시청에서 블루 헤븐 USB 2.0 케이블은 어떤 음향을 들려주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아날로그 케이블에 대한 설명을 이 자리에 그대로 옮겨 놓아도 좋을 만큼, 블루 헤븐 사운드를 디지털로 깔끔하게 전환한 음향을 들려주었다. 새디의 DAW인 PCM2․BB2-J(인터페이스), 벤치마크의 DAC1 USB, 그리고 필자의 레퍼런스 장비로 구성된 시스템에서 이 케이블은 적극적인 발성과 표현력을 기반으로 하여 음악의 표정을 명쾌하게 이끌어 내는 전형적인 블루 헤븐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이러한 면모는 필자가 아날로그 LP에서 24/96 포맷으로 리마스터링한 음악 파일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로베르 카자드쉬가 연주하는 슈만의 환상곡(콜럼비아) 녹음에서는 피아노의 중량감이 다소 약해지는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카자드쉬 피아니즘에 관능미를 살짝 얹은 미음 계열의 음색이 자연스러운 발성 속에 용해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고, 릴리 크라우스가 연주하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K284에서는 이 녹음 특유의 두터운 텍스추어를 살짝 줄이면서 크라우스 특유의 우아함에 적극성을 실어 올리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며,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토벤의 제5번 교향곡(DG, 1960년대)로 오면, 적절한 스케일을 유지하면서, 이 녹음이 자랑하는 장쾌하면서도 유려한 음향을 적극 수용하는 음향을 들려주었다.
 
그렇다면 팝 음악 재생에서는 어떤 음향을 들려주었는가? 리키 리 존스가 노래하는 에서는 블루 헤븐 특유의 견실한 중역을 토대로 하여 존스가 한 걸음 정도 앞으로 나오면서 음상 자체가 입체적으로 떠오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고, 재니스 이안이 노래하는 에서는 이 녹음을 감싸고도는 풍부한 공간감과 우아한 음색을 유연한 필치로 살려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지금까지 노도스트의 신제품인 블루 헤븐 USB 2.0 케이블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결론을 내려 보면, 이 케이블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노도스트의 정체성과 자존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가가 이미 확립된 아날로그 케이블 시리즈에 디지털 케이블을 추가하는 배짱, 그리고 아날로그와 디지털 음향을 하나로 보고자 하는 확고한 음향 철학이 없다면, 이 케이블을 블루 헤븐 시리즈에 소속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이 케이블이 아날로그와 디지털 음향의 밑바닥을 흐르는 연속성과 공통점을 음향으로 실현해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