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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초, 홍콩 쇼에 갔을 때의 일이다. 어느 부스에 들어갔더니 많은 애호가들이 앞다퉈 카메라를 꺼내들고 찍고 있었다. 무슨 제품을 찍나 싶어 살펴봤더니, 웬걸 어떤 아저씨를 찍고 있었다. 마치 그 모양새가 무슨 무비 스타나 팝 스타와 같았다. 알고 보니 제프 넬슨씨다. 나를 보더니 약간 계면쩍은 듯 미소짓는다.

나중에 시간이 나서 다시 넬슨씨를 보러 갔다. 부스엔 윌슨 오디오의 알렉산드리아 신작이 볼더의 기어에 물려 멋지게 구동되고 있었다. 마치 대해를 앞에 놓은 듯한 여유로움에 빠른 반응, 넓은 다이내믹스. 현대 하이 엔드가 추구하는 음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표현한 것으로, 듣고 있으면 그냥 빨려 들어간다.

 

사실 홍콩 쇼가 좋은 이유는, 많은 설계자들이 방문하지만 부스 진행은 수입사가 담당하기 때문에 비교적 그들이 한가하다는 것이다. 물론 중국을 위시한 아시아 시장 전체를 겨냥한 쇼인 만큼, 각 나라에서 온 디스트리뷰터와 만남이 끊이지 않는다. 구내 식당이나 커피 숍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비즈니스 토킹을 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본다. 그럼에도 다른 쇼에 비하면 훨씬 여유가 있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안성맞춤이다.

이 자리에서 내 관심은 3050에 걸맞는 프리앰프가 언제 나오냐, 하는 부분이었다. 아마 많은 팬들도 궁금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대뜸 3060 이야기를 꺼냈다. 현재 프리보다는 이 제품에 더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언제쯤 출시되느냔 말에 자신도 모르겠다고 한다.

 

원래 볼더는 신제품을 내는데 극히 신중하고 또 까다롭다. 특히 현재 플래그쉽을 이루는 3000 시리즈의 제품인 만큼, 함부로 출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미 3050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 주니어작은 비교적 수월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대략 그 만남이 있은지 10개월만에 이렇게 하이파이 클럽의 시청실에서 대면하게 되었다.

 

외관만 놓고 본다면, 3050의 포름과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3050이 두 개의 제품을 전제로 한 만큼, 사선을 길게 위 아래로 그어놓은 모습에서 일종의 대칭형을 이루는 반면, 3060은 가운데로 볼록 솟아서 단품으로써 완성을 이루고 있다. 폭은 비슷해도 위로 솟은 모양새가 더 높아서 전체적으로 3050의 한 짝보다는 크다는 인상이다. 하긴 스테레오기인 만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3050을 전제하지 않고, 순전히 3060만 살펴보면, 확실히 가공할 만한 스펙과 내용을 갖고 있다. 일례로 본 기의 무게만 해도 200여 Kg에 이른다. 무슨 스피커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스테레오 파워 앰프를 말하는 것이다!

처음 3060을 소개할 때 볼더의 자료에서 줄기차게 나온 단어가 바로 “모어”(more)였다. 모어 파워, 모어 컨트롤, 모어 TR ... “More of Everything”, 그러니까 모든 면에서 모어라는 말로, 얼마나 품질에 자신있는가 알게 해주는 모토다. 그 모어라는 단어는 본 작에도 해당된다. 아무튼 전세계의 모든 스테레오 파워 앰프를 다 갖다 놔도 본 기보다 모어한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출력, 사이즈, 물량 투입에서 자신할 수 있다.

 

그러나 볼더가 추구한 게 단지 외형적인, 스펙에만 치중한 모어일까? 그것은 절대 아니다. 어디까지나 오디오 기기는 음악의 재생을 기본으로 하고, 그 음악의 감수성과 즐거움을 극대화시키는 도구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 점에서 넬슨씨는 어느 정도 튼튼한 백그라운드를 갖추고 있다.

제프 넬슨이라는 이름이 유명세를 탄 것은 멀리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남부 캘리포니아쪽에 거주하면서 방송국 및 스튜디오 장비를 만드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래봐야 고작 20대의 풋풋한 젊은이였는데, 그가 관여한 톰캣(Tomcat)이라는 제품이 주목받으면서 그의 이름도 덩달아 알려진 것이다.

이 제품은 방송 및 스튜디오에 쓰이는 테이프 레코더로, 그 해드 부분, 그러니까 카트리지가 특히 잘 설계되어, 음질이 매우 좋았다. 프로용임에도 불구하고 약 3천여 개 이상 팔려나간 것은 순전히 이 부분의 탁월한 성능 때문이다. 당시 넬슨씨는 이런 작은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음향장비 전반, 특히 앰프쪽에 주목해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즈음 그는 딘 젠센(Dean Jensen)씨를 알게 된다. 트랜스포머 제작자로 익히 알려진 젠센씨는 당시 990이라는 이름이 붙은 OP 앰프를 발표했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일 만큼 미세한 신호를 다룰 수 있었지만, 반대로 험이나 열에 취약한 부분도 있었다. 이 OP 앰프를 개량해서 자기 것으로 만든 사람이 바로 넬슨씨로, 그 전통은 지금의 제품에까지 이어진다.

처음 990이 나왔을 때엔 69개의 부품을 동원해서 만들었지만, 현행 모델인 993에 이르면 92개의 부품이 동원된다. 이를 여러 개 사용해서 완벽한 게인단을 설계하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일체 험이 뜨거나 과열되면 안 되니, 그에 따르는 치밀한 계측과 세부 개량의 과정은 말 그대로 악전고투다.

아무튼 990을 이용한 최초의 제품은 500이라는 스테레오 파워로, 1984년에 정식 출시되었는데, 그야말로 날개 돛인 듯 팔렸다. 수많은 스튜디오가 이를 이용한 바, 마이클 잭슨, 프린스, U2, 밴 헤일런 등의 뮤지션들이 그 혜택을 얻었다. 스타 워즈 시리즈의 스카이워커 또한 이 제품의 애용자였다.

이후 이를 오디오파일용으로 개량한 500AE가 나오면서, 볼더는 하이파이 세계에도 알려지게 되어, 전세계의 많은 수입상들이 주목하게 된다. 실제로 이어서 나온 여러 제품들의 퀄리티가 이보다 몇 배나 비싼 하이엔드 제품보다 나으면 나았지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볼더의 이름을 전세계에 각인시킨 2000 시리즈가 나오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과연 볼더의 장점은 무엇일까? 완벽주의라고 말할 수 있지만, 많은 하이엔드 회사들도 같은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어딘지 모르게 진부하다. 하지만 볼더만의 특징이라면, 대출력에 수많은 부품에 어마어마한 섀시에, 아무튼 공이 많이 드는 제품임에도 그 어느 부분 하나 소홀함이 없다는 점이다. 많은 돈을 들여 구입한 분들 모두가 만족하는 것이 바로 음질을 포함한 모든 부분에 걸친 높은 완성도인 것이다. 그런 완벽주의는 당연히 본 작에도 이어지고 있다.

우선 투입된 물량부터 보자. 무려 5개의 전원 트랜스가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가운데, A 클래스로 설계된 본 작을 위해 출력 TR이 120개, 그러니까 채널당 60개나 동원되고 있다. 현재 홈 페이지에선 어떤 TR이 쓰였는지 밝히지 않았지만, 3050에 비춰보면 바이폴라 TR이 사용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TR이 바이폴라와 FET 계열이다. 후자의 경우, 설계가 용이하고, 간략한 회로 구성이 가능한 반면, 고장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FET간의 오차율도 높은 편이라, 이를 사용하는 회사들은 이런 난관의 극복에 고심하고 있다.

반면 바이폴라는 튼튼하고, 대역폭이 넓으며, 특히 저역의 재생에 좋다. 단점이라면 열이 많다. 어떤 발열 구조를 만드느냐가 역시 관건인데, 이 부분에서 본 기는 야심찬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바로 거대한 히트 싱크다. 이를 통해 외부로 열을 손쉽게 발산하는 구조를 내건 것이다. 실제로 앰프를 구동할 때 섀시를 만져보면 펄펄 끓지 않는다. A 클래스로 채널당 900 와트를 내는 앰프치고는 이례적인 상황이다.

물론 120개의 바이폴라 TR중에 한 두 개만 고장이 나도 앰프는 제소리를 내지 못한다. 이를 위해 본 기엔 기기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모니터링 기능을 달았다. 이를 통해 끝없이 기기의 오작동 가능성을 체크하는 것이다. 아니, 이미 그 전에 본 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트러블을 미리 시물레이션해서 완벽한 조치를 해놨으니 그야말로 천지지변이 아닌 이상 본 기에 이상이 생길 일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편 수려한 섀시를 보면 단순히 디자인적인 이유로만 제조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90도 직각으로 섀시의 구석이 이뤄진 부분이 없다. 이렇게 복잡한 구성을 도입한 것은 약시 벽에서 방사되어 오는 음을 교묘하게 처리하기 위함이다. 직각일 경우 심한 왜곡과 변형을 초래할 수 있는 바, 이 부분을 대폭 개선한 것이다. 하긴 워낙 본 기의 덩치가 크므로, 그 자체가 하나의 왜곡 요소가 될 수 있으니, 룸 어쿠스틱의 차원에서 미리 차단하고 있다고 보면 좋을 듯싶다.

 

본 기의 시청을 위해 다인오디오의 신작 에피던스 플래티넘에 코드의 CPA 8000 프리 그리고 린 클라이맥스 DS를 동원했다. 참고로 시청 트랙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슈만 《교향곡 1번 Spring 1악장》 샤를르 뮌시 (지휘) 보스턴 심포니
-드보르작 《바이올린 협주곡》 E. 파인만 (바이올린) 체코 필하모닉
-다이내나 크롤 《The Look of Love》
-다이어 스트레이츠 《Private Investigation》

첫 곡으로 들은 슈만의 경우, 스피커를 단단히 움켜쥐고, 정보량을 있는 힘껏 전달하는 모습이 눈에 선할 정도로 멋진 음이 나왔다. 이를테면 오케스트라가 총주 부분에서 팍 터트릴 때의 기세나 다이내믹스가 아무렇지도 않게 재현되는가 하면, 수많은 악기들의 위치나 음색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난다. 난 처음으로 이 곡이 일종의 왈츠 리듬을 차용한 것을 느꼈는데, 그것은 그만큼 음성 정보를 드러낼수록 원곡이 가진 느낌이나 맛이 잘 살아난다는 뜻이다. 그렇다. 음악성이라는 부분은 어쩌면 이런 완전무결한 테크놀로지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파인만이 연주하는 드보르작의 작품은 협주곡이라는 장르의 재미를 한껏 즐기게 해준다. 일단 그의 빼어난 기교는 무척 현란하면서도 드라마틱해서 긴장의 끈을 늦추게 하지 않는다. 중간중간 출몰하는 오케스트라의 백업도 그대로 리얼 타임, 바이올린과 일체의 어긋남이 없다. 이렇게 리듬과 타이밍이 탁탁 맞아 들어가면서, 방대한 주파수 대역과 빅 다이내믹스를 쉽게 표현하는 것은 그야말로 앰프의 몫이라 하겠다. 사실 지구상의 그 어떤 스피커를 갖다놔도 못 울릴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는 반대로 보사 노바를 바탕으로 약간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표현을 듣기 위해 크롤을 선택했다. 이 부분 역시 느긋하고, 기분좋게 재현한다. 악기 수도 많지 않고, 목소리도 약간 건조한 듯 하지만, 살며시 미소짓게 하는 아기자기한 맛을 일체 과장없이 재현하는 부분은 역시 대는 소를 점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게 한다.

마지막으로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곡은, 어떤 그림이나 분위기를 형상화한 컨셉트를 갖고 있으므로, 그 표현력에 있어서 빼어난 정밀도와 해상도를 필요로 한다. 그 점에서 확실이 이 곡의 매력을 새삼 절감할 만큼 멋진 음이 나왔다. 예를 들어 중간을 점한 어쿠스틱 기타의 리얼한 음상이라던가 중간중간 이펙트를 내는 전기 기타, 킥 드럼 등의 돌진이 여기저기에서 펑펑 터지는데, 여기서 느끼는 오디오적 쾌감이 대단하다. 스튜디오의 정교한 음향 처리 기술이 낱낱이 드러날 뿐 아니라, 뭐 더 없어, 라고 캐묻는 듯한 넉넉한 스케일과 잠재력을 이 짧은 지면에 더 이상 담을 수 없어 유감이다. 아무튼 볼더라는 마크를 달 만한 내용과 기술의 집약체라 할 만한 제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