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디지털 파일의 재생이라는 커다란 수레바퀴는 소리 없이 하이파이 문화를 큰 폭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눈 앞에 펼쳐진 하드웨어의 풍경에는 그다지 눈에 띄는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위대한 혁명처럼 ‘권력이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변화의 핵심에는 의심의 여지 없이 CD의 카리스마로 한 세대를 군림해온 ‘저장매체’로 부터 주도권을 넘겨받은 유무선 스토리지, 즉 ‘저장기기’의 확산이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물결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오디오파일들은 직간접적으로 이런 변화의 한 복판에 놓여 있어서 그 흐름을 감지하고 참여하거나, 혹은 그저 관망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어떤 입장에 있든, 자신이 사용할 기기변경의 순간에 마주치면 과거의 어느 때보다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게 된다. 자칫 시대착오적인 선택을 하거나 해서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점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

파일을 저장하고 불러내는 가장 일반적인 도구로서 아직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대신할 대상은 없다. 상황에 따라 외장하드, 혹은 좀더 전문화된 경우에는 무선 스토리지가 그 기능을 대행하고 있을 뿐이다. 그 어느 경우가 되든 이들을 통합하는, 문자 그대로 ‘유니버설’ 일방향 전송 규격은 이전의 어느 방식보다 보편적인 지위를 확보했다. USB 전송에 대해 새삼 부언할 일은 아니지만, 하이파이 오디오가 상기한 ‘저장 매체’로부터 ‘저장 기기’로 패러다임이 이동하는 동안 재생기기의 모습도 필연적인 변화를 거치고 있다. 지금까지는 하이파이 기기의 기본 틀이 흔들린다거나 하지 않고 컴퓨터 인터페이스를 차용하고 있지만, 이 변화의 물결이 언제, 어디까지 이어질 지에 대해서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USB입력단자가 달린 DAC나 파일 플레이어들은 아직 필자에게 익숙하지가 않다. 사용법의 문제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광경 부터가 그렇다. 일단 컴퓨터 전용의 인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케이블 디자인이 그렇고, XLR이나 RCA 단자에 익숙해져 있는 빈틈 없이 들어맞는 접속 자체의 견고함이 없는 석연찮아 보이는 결속방식이 맥이 풀리게 한다. 오래 전 마크 레빈슨의 앰프에서 데이터 케이블 접속 단자를 보았을 때도 유사한 느낌을 받은 바 있지만, 현재의 USB단자 또한 뭔가 위화감이 느껴지고 자연스럽지가 않은 모습이다.

하지만, 음악파일이 유례없이 다양한 형태로 전송이 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컴퓨터 환경 인터페이스의 채용은 숙명처럼 이미 스토리의 한 복판에까지 와 있다. 너나 할 것 없는 오디오산업의 신 트렌드이자, 하이파이가 가야 할 길임을 인정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이에 부응해서 USB 단자와 케이블 또한 재생 품질의 극대화를 위해 고급화 작업 중에 있고, 아마도 조만간 파일이 재생을 위해 흘러가는 모든 경로의 컴포넌트들은 유사한 과정을 거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종종 필자는 컴퓨팅과 시너지를 만들어낼 대상으로서의 하이파이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점쳐보게 된다. 비근하게는, 장담컨대 조만간 금도금 단자의 USB 케이블을 만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솔리톤의 USB SC-4는 오디오시장의 트렌드에 꽤나 빠르게, 그리고 정확히 꿰뚫어 본 결과로 생겨난 제품으로 파악된다. 본 제품은 현재 파일 네트워킹의 주류가 되는 USB 2.0 기반 제품이며 다른 디지털 케이블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구리(Cu) 재질로 제작되어 있다. 참고로 USB 2.0의 규격에는 두 개의 데이터 전송케이블과 전원선, 어스를 포함해서 총 4개의 선재가 사용되는데, 전체 선재가 모두 구리로 된 심선을 사용하고 있다. 각 심선의 단면적은 0.5mm x 0.5mm이고, 당연하게도 솔리톤의 모든 제품에 적용되어 있는 단결정 제작 방식으로 제작되어 있으며 선재와 단자의 연결은 콜드웰딩 방식으로 압착 처리되어 있다.

 

지난 번 RCA 디지털 케이블 시청시에도 느낀 바, 본 제품은 가격 또한 범용성을 갖춰 제작되었지만, 제품의 등급으로 볼 때 가격을 따라 일률적으로 제작사양을 낮추었다기보다 기존의 제품개발을 하면서 생긴 노하우를 최대한 활용해서 제작되었다는 점이 눈에 뜨인다. 그런 차원에서 본 제품의 쉴딩 방식이 갖는 의미는 크다고 본다.

 

5V 정도에 불과하지만 USB케이블은 숙명적으로 전원을 통과시켜야 하는데, 특정 제작사들은 전원선을 데이터 케이블로부터 격리시키거나 차폐시키기 위한 비용과 노력을 많이 들이는 만큼 음질에 관건이 되는 주요 사안이다. 음악파일용 USB 케이블 또한 전문 케이블 제조사이어야 하는 의미가 주로 이곳에 있다. 알려진 바, 테프론으로 시작되어 이중 피복을 거쳐 알루미늄으로 재삼 마감시키는 솔리톤의 차폐방식에는 단결정 이론 만큼이나 많은 노하우가 반영되어 있다. 다른 상위 제품과 마찬가지로 매쉬 소재의 익스펜더로 마감된 SC-4의 외곽 굵기는 RCA 디지털 케이블의 경우와 유사해 보인다. 단지 피복의 색깔이 블랙톤에 붉은 띠가 흐르게 디자인되어 있는 점이 단정한 느낌을 준다. 커넥터 쪽과 포트 쪽 공히 두터운 붉은 색 압착튜브로 견고하게 마무리되어 있다.

심선의 굵기가 다소 다르다는 점, 그리고 방식의 차이점 등을 제외하고는 동일한 구리 선재를 사용하고 있는 SC-4는 지난 시간에 시청한 RCA와는 사뭇 다른 뉘앙스이다. RCA의 경우, 동선 고유의 두터움과 질감을 기반으로 은선의 투명함이 빛을 발했다고 한다면, 본 SC-4의 경우 은선에 가까운 스피드와 광채를 핵심으로 하고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앞서 시청했던 은도금 OFC 선재로 유명한 중견 브랜드 제품과 비교해볼 때 스테이징의 스케일이 확장되었고, 안 그래도 배경이 깨끗하기로 유명한 앞서의 제품보다 좀더 적막한 배경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 놀라웠다. 중역에서 탑엔드에 이르는 구간에 다소 광채가 생겨났고 도드라지는 느낌을 만든다는 점은 이채로왔다. 이런 특성은 일반적인 동선에서 나타나는 특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하튼 저역에는 밀도감을, 고역에는 광채를 만들어 내며, 대부분의 필자의 레퍼런스 곡들에서 새로운 뉘앙스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 크게 주목하게 되었다.

 

이 점은 어쩌면 브라이스턴 BDA-2의 USB 출력이 SPDIF 출력보다 우세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사뭇 다른 느낌이다. 백건우가 연주하는 <함머클라비어>는 동선 고유의 특성이 발휘되는 연주인데, 피아노에 핵이 깊어지고 심지가 분명하게 들린다. 위쪽 대역은 적당히 밝아서 집중력을 발휘한다거나 차분하다거나 하는 느낌은 아니지만, 마치 스타인웨이에서 야마하로 피아노를 바꾼 듯한 뉘앙스랄까? 시청한 브라이스턴의 스피커가 피아노에 장기를 발휘한다거나 하지는 않아 보임에도 필자가 아는 일반적인 이 곡에서 밀도감이 상승한 느낌을 받는다. 짙은 색채감으로 빠져드는 쪽이라기 보다는 순발력 있는 이동과 다소 선명하고 밝은 톤으로 어필하는 스타일이다.

 

에이지 오우가 지휘하는 말러의 <대지의 노래> 중 ‘Von der Jurgen’을 들어보면 빈 공간이 좀더 분명히 보인다. 독창자와 무대 위의 움직임은 좀더 선명해지고 공간은 적막하게 그려내어 본 녹음의 의도대로 무대 위의 상황을 드라마틱하고도 구체적으로 묘사해 주어 좋았다. 터프한 중량감과 강렬함을 심화시키지는 않지만, 매끈하고 유연하게 음을 연결시켜주어 총주시에도 혼탁함 없이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게 해주었다.

르네 야콥스와 RIAS 실내 합창단-베를린 고음악아카데미 팀이 연주하는 바하의 ‘모텟’은 상기된 얼굴로 열심히 노래하는 적극적인 코러스를 들려준다. 음상이 엷게 들리기 쉬운 본 곡에서 열띤 생동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약음에서도 음의 연결이 선명하고 광채가 느껴진다. 합창곡에서 받은 좋은 인상은 가디너의 ‘눈을 뜨라, 저 소리가 우릴 부른다’ 까지 옮겨가게 되었는데, ‘시온이 파수꾼의 노래를 듣도다’ 부분을 들어보면 코러스의 굴곡이 분명해져 있다. 오케스트라의 새김도 깊어져서 마치 낮은 중역대의 양감이 늘어난 듯한 느낌도 받는다. 하지만 둔해져 있다거나 답답한 느낌이 없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본 케이블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드보르작 교향곡 7번 3악장의 유려함은 이런 중역의 존재감이 분명해져 있다는 좋은 사례가 된다. 이음매가 부자연스럽지 않고 유연한 특성은 이런 현악을 중심으로 하는 오케스트레이션을 아름답게 들려주는 장기를 발휘하고 있어 보인다. 이 곡을 시청하면서 디지털 케이블에 있어 현악기의 표현은 좋은 지표가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아울러 본 연주는 기밀하고 조직력이 잘 발휘된 느낌을 주는 수연으로 들려주었다.

한 편, 머룬 5의 ‘Moves Like Jagger’와 같은 업템포의 곡에서는 뭔가 이 케이블의 특징이 어필하는 부분이 딱히 발견되지 않는다. 빠르다거나 느리지도 않으며, 밸런스가 특정 대역에 강화되어 들리지도 않는다. 고역 쪽이 여위지 않으면서도 밝게 들리는 특성은 이 곡의 경쾌한 감성과 잘 어울리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다수의 하이파이 케이블 업체들이 앞다투어 USB 케이블의 출시에 매진하고 있고, 솔리톤 또한 이 추세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어 보인다. 올해 들어 USB케이블과 더불어 모바일폰 및 태블렛 용 미니 케이블까지 출시하고 있다. 본 USB SC-4는 솔리톤에게는 또 한 번의 전기를 마련하는 의미 있는 제품으로 생각된다. 천 만원에 육박하는 플래그쉽 제품으로 시작한 솔리톤이 20만원대의 범용 케이블을 출시하는 일은 다음 두 가지를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는 보편적인 그룹에까지 수직적인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장시키기 위한 활동이며, 두 번째로는 컴퓨터 기반, 혹은 파일 재생 플레이어의 확산이라는 거대한 시장의 추세에 대응하는 빠른 움직임이다.

단결정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어 보인다. 특히 디지털 파일 전송과 같은, 귀로 들었을 때 가장 큰 차이가 나는, 미세한 부분에서의 차이를 극대화시킨다는 점에서 솔리톤의 균일한 파일전송 규범은 빛을 발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본 제품은 고유의 단결정 이론을 기반으로 하는 솔리톤의 사운드를 대중적으로 공유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극단적으로 보아, USB 케이블을 사용할 그룹에게는 케이블의 품질에 따른 음질의 차이에 대해 그다지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경우들도 상당수 발견될 것으로 보이는데, 솔리톤의 제작자는 이미 그런 심리를 반영해서 본 제품을 제작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만큼 컴퓨터 기반 오디오에 불을 지필 만한 조건을 잘 갖춘 대표적인 제품인 동시에, 초 하이엔드 케이블 제작사인 솔리톤이 ‘대중 속으로’ 를 외치며 만들어낸 의욕 넘치는 제품이다. 보다 보편적인 그룹들이 자신이 오래 들어 익숙한 곡들로 시청을 해보았으면 좋겠다. 본 제품을 놓고 그것보다 좋은 ‘시청평’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