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디지털 인터페이스의 변화는 기존에 중요하게 논의되지 않았던 많은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다. 가장 비근한 예가 USB 전송 인터페이스다. 에어 어쿠스틱스 등에 의해 선도적으로 하이엔드 기기에 채용된 USB 2.0 인터페이스는 이제 홈 디지털 기기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PC 에서는 USB 3.0이 보편화된 상태에 이르렀다. 하지만 하이파이 분야에서 USB 인터페이스는 단순히 그 전송 스피드와 초당 전송 용량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음질적인 측면을 고려해야하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디지털 전송 인터페이스로 활용된 S/PDIF, Toslink, AES/EBU 가 아닌 USB 인터페이스는 사실 태생적으로 여러 가지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SB 전송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것은 마치 필요악 같은 것으로 일단 여러 기기들과 호환성이 뛰어나며 특히 USB DAC에서 DSD 음원을 재생할 경우 USB 인터페이스 외에는 네이티브(Native) 전송이 어렵다. 때로는 USB 입력단이 없는 DAC을 활용해야하는 경우 USB DDC를 여전히 사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USB 인터페이스가 가지고 있는 음질적 약점은 여전하다. 데이터 전송에 있어서 필요한 전원에 관련된 것이 그 핵심이며 또 하나는 클럭 동기화에 관한 부분이다. 우선 클럭 동기화는 비동기(Asynchroous) 형식으로 설계된 USB 입력단이 설계되면서 많은 부분 그 단점이 해소된 상태다. 그리고 이 음원 정보를 디지털 신호로 담은 데이터를 전송시켜주는 전원은 USB 케이블 안 또는 밖에서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하나는 USB 케이블의 지오메트리를 개선하는 것으로 USB 내부 구조를 개선해 데이터 전송에 있어 노이즈나 왜곡을 최소화하는 형태다. 데이터 전송 도체와 전원 전송을 위한 도체의 차폐와 절연에 하이파이 케이블 수준의 섬세한 기술들이 적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PC 또는 네트워크 플레이어와 연결된 상태에서 전압 강하와 그로 인한 끊김, 왜곡 등은 USB 케이블만으로는 해결할 방도가 없다. 그래서 최근 여러 메이커에서는 USB 전원과 관련된 액세서리 출시가 붐을 이루고 있고 때로는 USB 허브 형태의 기기들이 이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오디오퀘스트의 지터버그는 PC 등 USB 출력단에 적용할 수 있는 장치로 전원 노이즈를 해소시켜 음질을 상승시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 외에 최근 반오디오, 웨이버사, 솜오디오 등에서 출시한 허브 들도 이러한 USB 전원 문제를 나름 영리하게 해결해주고 있다. 이 때 장거리 전송의 장점은 부가적인 소득으로 따라오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대게 이러한 액세서리를 활용하면 모든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해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물론 많은 도움이 되며 음질적인 상승이 확인된다. 열악한 PC 전원이 아닌 별도의 정제되고 일정한 전압을 가진 전원이 공급되며 때로는 클럭을 동기화시켜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효과를 기대하기 이전에 USB 케이블 자체의 퀄리티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액세서리는 말 그대로 신호 전송을 돕는 것이지 신호를 만들어내는 장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USB 케이블이 기기에 도착하기 전에 흐트러진 데이터를 다시 살려주진 못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한 번 잃어버린 음악 정보는 되살릴 수 없다. USB 전송 체계에서 이미 조각난 퍼즐은 복구하기 어렵다. 액티브 회로가 내장된 디바이스가 아닌, 단지 케이블이기 때문이다.

헤밍웨이가 출시한 이번 USB 케이블은 바로 USB 전송에서 기본이 되는 데이터 전송에 있어 충실하기 위한 그들의 두 번째 출사표다. 데이터와 전원을 전송하는 도체는 헤밍웨이의 특별한 도체가 그대로 사용되었으며 신호 간섭과 왜곡,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기본적인 방책이 훌륭하게 세워져 있다. 그리고 그 방식은 매우 특별한데 도체의 소재와 순도 또는 결정체의 구조 등 도체 자체의 특성보다는 지오메트리에 집중되어 있다. 물론 도체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어느 정도 이상 그레이드의 도체가 확보된 상태라면 그 때 부터는 차폐와 절연 그리고 도체의 배열과 조합에서 화룡정점을 찍는다.

헤밍웨이의 인디고 같은 케이블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찬사를 받은 이유는 바로 이 분야에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효과를 이론적으로 측정하고 지터 및 전원 왜곡 수치 등에 대해 자료를 통해 음질적인 성과는 증명되었다. 예를 들어 신호가 흐르는 케이블에서 유도되는 자기장과 역기전류를 단순히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활용한 FMCF(Frequency Modulation Cavity Fundamentals) 특허기술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 파이프 안에 도체를 넣은 공기 절연 및 수준 높은 차폐, 진동 제어 등이 헤밍웨이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했다.

이후 잠잠했던 헤밍웨이가 다시 한 번 용트림하기 시작했던 건 크리에이션 시리즈 런칭이다. 이는 기존 라인업에서 지오메트리 방식에 또 한 번 변화를 가져왔다. 동선과 은도금 동선 등을 서로 다른 비율로 섞어 배열하는 일종의 멀티웨이 전송을 표방한 것. 이는 마치 실텍 같은 케이블이 은과 금으로 만들어진 실버골드 도체를 어떤 방식, 비율로 조합, 배열하는 것을 연상시킨다. 때로는 접지 케이블의 도체 종류와 심선 개수까지 수 많은 실험을 통해 결정하는 과정을 통해 탄생한 하이엔드 케이블이다. 

크리에이션 USB을 처음 손에 들어보니 매우 가볍다. 또한 기존에 헤밍웨이에서 출시했던 USB 케이블보다 얇고 가늘기 때문에 운용이 쉽다. 게다가 선재 자체가 변경되면서 매우 유연해졌기 때문에 기기와 기기 사이에 세팅하기가 한결 수월해진 모습이다. 하지만 단자는 여전히 일반적인 인터케이블 단자보다 더 크고 묵직한 편이다. 제작자의 설명을 빌리자면 여타 크리에이션 케이블과 달리 USB 케이블과 LAN 케이블의 경우 모두 동선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케이블 중간에 도체의 꼬임 및 배열 등을 바꾸어 자장과 관련된 특성을 바꾸는 구조라고 한다. 

테스트는 필자의 집에서 일주일, 그리고 하이파이클럽에서 다시 몇 번의 테스트를 해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케이블 등 액세서리의 경우 세팅 환경이나 오디오의 그레이드 및 기본 성능, 공간에 따른 조건 변수가 최종 결과에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다음은 이 모두를 종합한 결과로 다양한 리스닝 테스트 과정을 거쳐 그 중 가장 유의미한 특성을 포착했다. 집에서는 B&W 801, KEF LS50 스피커, 스텔로 AI700U, 솜오디오 SDP-1000, tx-USBhub EX, 윈도우 PC 등을 활용했다. 이어 최종적으로 하이파이클럽에서는 골든이어 테크놀로지 Triton One 스피커 및 웨이버사 시스템즈 V-amp(인티앰프) 및 W DAC3, 애플 맥북 등을 활용했음을 밝힌다.

Maurizio Pollini - Piano Sonatas

헤밍웨이 USB 케이블의 특성은 고스란히 마이크로 영역에서 드러난다. 폴리니가 연주한 베토벤의 “Piano Sonata No.16 In G, Op.31 No.1: 1. Allegro vivace”를 들어보면 더욱 그렇다. 피아노 타건에 힘이 실려 약간 더 힘차고 쾌활한 음조로 들린다. 응집력이 실린 각 음들이 다이내믹한 동적 구조를 가지고 움직이며 남성적인 중량감이 돋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힘의 과잉으로 인한 파열음 등 터지는 듯한 느낌은 없다. 음의 끝단에서 느껴지는 촉감이 지저분하지 않고 깔끔하고 빠르게 릴리즈 된다. 마치 90년대 FET 출력석을 사용한 솔리드스테이트 앰프를 듣다가 잘 만든 광대역 D클래스 앰프를 듣는 듯 거침없이 명쾌하고 빠르며 투명한 소리다.

Diana Krall - A case of You

다이애나 크롤의 'A case of you' 같은 보컬 곡에서도 유사한 특징들이 감지된다. 보컬의 위치가 더욱 선명하며 기존에 들었던 음이 다소 흐릿하고 뿌연 음상이었다는 것이 반증된다. 보컬의 이미징이 단지 입술 따위가 아니라 전신 실루엣을 드러낸다. 이미징이 더욱 선명해지다보니 매우 농도 짙은 포커싱을 만들어낸다. 재미있는 것은 무대가 전/후로 더 깊어졌다는 사실이다. 정보량이 높고 힘이 실려 있으나 공격적으로 흐르지 않으며 부드러운 가운데 심도 있고 중량감 넘치는 소리로 보답한다. 배경은 매우 깨끗하며 서늘할 만큼 조용하다. 

Rachel Podger - Concerto No. 1 in D Major

레이첼 포저의 [Vivaldi: L’Estro Armonico] 앨범 중 “Concerto No. 1 in D Major - Allegro”를 들어보면서 음의 표면 텍스쳐를 살펴보았다. 치고 나오는 바이올린의 첫 음절부터 빠르고 상쾌하다. 음조가 밝고 탁 트여있어 매우 활달하며 컨트라스트가 큰 음조를 보인다. 텍스처 표면에 어떤 그레인 등 지저분한 이물질은 포착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화려하거나 촉촉한 질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정확히 중립적이며 호쾌한 톤이다. 왜곡이 적고 평탄한 소리며 음장이 넓고 뚜렷한 이미징을 가졌다. 스피커로 비유하자면 레벨, 윌슨, 틸 등 전형적인 미국 스타일의 사운드다.

Bernard Haitink - Symphony No.9

버나드 하이팅크가 지휘한 9번 교향곡을 LSO 라이브 버전으로 감상해보면 좀 더 매크로 영역에서의 특성을 살필 수 있다. 눈에 띄는 부분은 저역 해상력의 상승과 중역 대역의 착색이 느껴지지 않는 맑은 음색이다. 또한 여러 악기의 이미징이 뚜렷해지면서 악기와 악기 사이에 숨쉴 수 있는 공간이 생겨 홀 톤이 제법 살아난다. 긍정적인 변화다. 차분하게 정리된 배음 덕에 각 악기의 질감과 뉘앙스 표현도 생생해지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것은 원래 없었던 정보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기존에도 출력되고 있던 신호였으나 노이즈 아래에 가려 잠겨있던 정보들이다. 

USB 케이블이나 기타 USB 관련 액세서리, 허브 등의 목적은 동일하다. 하지만 어떤 필터나 허브 등을 사용하더라고 기본적으로 USB 케이블의 성능이 보장된 이후 액세서리의 사용이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다. 녹음상태에서 원래 존재했던 노이즈가 아니라 깨끗한 고음질 레코딩이 USB 인터페이스를 거치며 노이즈에 오염될 경우 매우 불편해진다. 이것은 특히 장시간 음악 감상의 경우 ‘Digital fatigue’ 로 나타난다. 아날로그 노이즈와는 태생이 다른 것으로 특히 가장 민감한 가청 주파수 대역 중 중역과 고역 쪽에서 두드러진다. 즉 중, 고역의 배음, 하모닉스 위에 타고 들어와 혼탁한 배음을 만든다. 이것은 음상을 흐릿하게 하며 이미징 주변을 불규칙적인 노이즈로 더럽힌다. 당연히 중, 고역은 탁해지고 스테이징은 불분명해진다. 

헤밍웨이 USB 케이블은 음질적인 성격상 헤밍웨이의 기존 케이블들과 거의 유사한 음질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AES/EBU, Coaxial 도 아닌 USB 인터페이스라는 열악한 플랫폼 위에서도 그러한 특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매우 놀랍다. 이건 디지털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헤밍웨이 USB 케이블이 당신이 가지고 있는 디지털 사운드의 모든 것을 해결해줄 거라 맹신하지는 말아라. 단, 3미터 미만의 짧은 거리에서는 별도의 USB 액세서리를 필요로 하지 않게 할 것이다. 그 가치가 이 케이블 안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헤밍웨이 USB 는 USB 인터페이스를 가르는 한 줄기 빛처럼 우리 앞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