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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 특성을 도둑맞다

여기 하나의 신기한 헤드폰이 하나 나왔다. 크고 멋진 헤드폰 박스의 자석식 잠금장치를 열고 내용물을 확인해보니 헤드폰과 네 개의 이어팁이 들어있다. USB A타입 케이블이 들어있는데 다름 아닌 충전용이다. 누라폰은 블루투스로 작동하는 헤드폰이다. 무게는 329g, 배터리로 작동하며 한번 충전(3시간)하면 최대 20시간까지 작동한다. 노이즈 차폐 기능은 두 종류로 일단 듀얼 패시브 차폐 기능이 있고 액티브로 작동하는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 머리에 써보니 외부 노이즈 차폐 기능은 매우 훌륭해 야외에서 듣기도 좋을 듯하다.

박스 안엔 매뉴얼 같은 것도 없어 어떻게 사용해야 하나 어리둥절하다가 작은 종이 명함 집처럼 생긴 카드를 박스 안에서 발견했다. 내용을 읽어보니 앱을 다운로드 받고 헤드폰을 뒤집어 쓴 후 ‘Hearing Profile’을 생성하란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일단 하라는 대로 앱을 다운받고 헤드폰을 쓰니 안내 멘트가 흘러나온다. 내가 사용 중인 아이폰 X의 블루투스를 헤드폰과 페어링시키고 안내에 따라 문제의 ‘Hearing Profile’ 생성 과정을 진행했다.

▲ Nuraphone 작동 원리

앱을 통해 진행과정을 볼 수 있는데 갑자기 양 쪽 채널에서 뭔지 모를 신호음이 불규칙적으로 흘러나오면서 앱 화면에 어떤 이미지가 형성된다. 신호음이 계속될수록 이 이미지는 어떤 구체적인 형상을 띄면서 결국 특정 이미지로 형상화되었다. 그리고 ‘Hearing Profile’을 완성했고 원하는 고유의 이름을 넣으라기에 ‘코난’이라고 타이핑하고 저장했다. 자신들이 운영하는 서버에 방금 내게서 무언가 정보를 얻어낸 후 저장한 듯하다. 뭔가 섬뜩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깟 청음 정보 퍼 가면 뭐하나 싶어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뭔가에 홀린 듯한 기분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이 헤드폰은 나의 청음 특성을 도둑질, 아니 프로파일링한 것이다. 

누라폰

이 헤드폰의 이름은 누라폰이다. 킥스타터닷컴에서 역사상 가장 큰 크라우드펀딩을 이끌어내면서 주목을 받았던 바로 그 헤드폰이 드디어 양산되어 나온 것이다. CES 등 해외 가전 전자전에서도 선보이면서 이젠 그저 아이디어 상품 수준을 넘어서 헤드폰의 혁신을 몰고왔다. 위에 언급한 대로 누라폰의 핵심이라면 하드웨어적인 부분보다 오히려 소프트웨어 부분에 있다. 누라폰의 기본 전제는 사람마다 다른 청음 특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사용자 맞춤형 음향 특성

이것은 귀 모양에 따라 이어폰을 커스터마이징 해주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어떤 사람은 저역을 잘 듣고 고역을 잘 못 듣는 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으며 이를 세분화하면 저역부터 고역까지 세부적인 청음 특성이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누라폰은 다양한 사운드 톤(OAA, Otaacoustic Emission)을 발생시켜 되돌아오는 음파를 마이크로 측정한 후 이 특성을 별도의 학습 엔진에 기록한 후 프로파일링한다. 그리고 사용자마다 다른 청각 특성에 맞는 음향 특성을 제공하고 있다. 마치 잠수함의 소나 음파 기술과 비슷하다.

그도 그럴 것이 누라는 호주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2016년 청각 전문병원의 의학박사 루크 캠벨로부터 그 연혁을 시작한다. 여기에 퀄컴의 엔지니어 출신 드라간 페트로비치가 합류하면서 누라를 만들게 되었다. 누라폰은 그 첫 번째 데뷔작으로 이어폰이 아닌 헤드폰 방식이다. 그런데 하드웨어적 특성부터 무척 특이하다. 무광 블랙톤의 헤드폰을 착용하려고 보면 음악이 나오는 오버 이어 컵 안에 이어캡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그렇다. 상상하는 그대로다. 부드러운 실리콘 소재의 이어컵 안쪽에서는 중, 저역을 재생하고 인이어 이어폰처럼 생긴 중앙 부분은 고역을 재생하는 방식이다. 청력 관련 정보를 프로파일링하기 위해 오버이어와 인이어를 절묘하게 조합해 고안한 디자인으로 이를 Inova™ 아키텍쳐라고 명명하고 있다.

다양한 특허 기술

청음 프로파일링 기능 외에 누라폰은 음향 측면에서 패시브 노이즈 차폐 기능 및 액티브 방식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결합한 leanANC™ 기능이 눈에 띈다. 소리가 밖으로 나가거나 들어오지 않도록 패시브, 액티브 방식을 모두 결합하고 있는 영민함이 돋보인다. 또한 Immersion 기능도 눈에 띈다. 이것은 앱에서 초기 세팅시 샘플 음악을 들으면서 설정할 수 있고 나중에 즐겨듣는 음악을 들으면서 조정도 가능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저역 레벨을 조정해 몰입도를 감쇄 또는 증가시킨다는 아이디어에서 착안한 듯하다. 너무 키우면 저역이 너무 강하지만 없애면 좀 허전한 편이다. 평소에 듣는 여러 음악, 특히 저역 성분을 많이 담고 있는 음악을 들어보면서 적당한 위치에 맞출 필요가 있다. 필자 같은 경우 중간 정도에 둘 때 가장 적당한 저역을 얻을 수 있었다.

또 하나는 소셜 모드(Social Mode™)라는 기능이다. 이는 전화 통화를 한다거나 주변 사람과 대화를 하고 싶을 경우 켜두면 편리하다. 내부에 마이크가 내장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데 외부의 소리를 들어야할 경우 소셜 모드를 켜면 깨끗한 품질의 통화까지도 가능하다. 

인터페이스 & 편의성

누라폰은 흥미롭고 혁신적인 기술 투성이다. 일단 헤드폰은 별도의 전원 on/off 스위치 같은 건 없다. 머리에 쓰면 자동으로 작동하며 벗으면 알아서 절약 모드로 돌아간다. 일단 머리에 누라폰을 착용하면 초기 셋업시 입력해둔 이름으로 안내 멘트가 나온다. 블루투스에 연결하니 “환영합니다. 코난”이라는 멘트와 함께 음악을 즐길 준비가 끝난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청음 프로파일링을 통해 저장된 음향 특성을 적용할 수도 있지만 ‘중립’ 모드를 따로 두어 적용하지 않은 상태로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 들어보면 중립 ‘사용자 지정’ 모드에서 듣는 게 훨씬 더 좋은 음질을 들을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참고로 초기 누라폰은 앱에서 한글을 지원하지 않았으나 이번 테스트시 대여받은 누라폰은 안내 멘트 및 메뉴 등에서 모두 한글을 지원했다. 단, 한글을 적용하는데 약 10분 정도 긴 세팅 시간이 요구되었다. 

한편 음악을 재생하는 것과 관련된 기능들, 예를 들어 재생, 일시 정지 그리고 이전 트랙이나 다음 트랙 재생, 볼륨 조정 등을 헤드폰의 좌/우에 마련된 버튼 터치를 통해 조절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누라폰의 특징적 기능들, 예를 들어 전화 응답/끊기 및 몰입 모드 활성/비활성, 소셜 모드 활성/비활성 등의 기능도 바로 이 버튼 터치를 통해 바꿀 수 있다. 

이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앱에서 버튼 설정을 기억해놓으면 사용자에 따라 한번 터치 또는 두 번 터치에 따라 바꿀 수 있는데 한 번 기억해놓으면 앱을 열지 않고도 때에 따라 여러 기능을 조작할 수 있다. 만일 음악을 재생하고 싶으면 좌측 버튼 탭 한번, 정지하고 싶으면 좌측 버튼 탭 두 번. 그리고 우측 탭엔 소셜 모드 활성화 및 몰입 모드 활성화 같은 기능을 탭 횟수에 따라 바뀔 수 있도록 저장해놓으면 무척 빠르고 편리하게 누라폰을 즐길 수 있다. 

착용감 & 사운드 퀄리티

헤드폰은 몸에 직접 접촉할 수 밖에 없는 음향기기이므로 옷처럼 착용감이 중요할 수 있다. 누라폰은 아주 편한 스타일은 아니다. 마치 이어폰과 헤드셋을 동시에 착용한 것과 유사하다. 이어컵이나 이어팁 모두 부드러운 소재긴 하지만 귓구멍과 귀 전체와 매우 넓은 면적에 걸쳐 접촉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또한 여름에 더운 장소에서 사용한다면 장시간 사용시 중간에 종종 벗었다가 다시 착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귀 구조를 상당 부분 밀착시키기 때문인데 보다 정확한 것은 여름이 되어봐야 할 것 같다.

사운드 퀄리티에 대해선 사실 객관화하기 힘든 면이 있다. 왜냐하면 하이파이 기기처럼 공간 최적화 같은 기술과 차원이 다른 ‘청음 프로파일링’ 기술 때문이다. 사실 중립 모드와 프로파일링을 통해 사용자 지정된 모드를 교차해 비교해보면 중립 모드는 매우 답답한 사운드로 들려 거의 들을 일이 없다. 하지만 사용자 지정 모드로 들어가 나에게 최적화된 사운드를 들어보면 전반적으로 소리가 상당히 선명해지면서 악기 분리도나 입체감이 상승한다.

오직 필자의 경우에 한정해서 평가하자면 일단 기본적인 밸런스는 상당히 뛰어나다. 소셜 모드를 끄고 Immersion 모드를 중간으로 설정했을 때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박진감 넘치는 저역과 리듬감이 잘 살아나는 등 기본기가 무척 훌륭하다. 자신만의 특별한 개성은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좋게 말하면 특정 장르나 녹음 시대에 따른 특별한 버릇이 없어 장르나 시대에 관계없이 무척 중립적이며 매력적인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총평 

빅 데이터와 딥 러닝 그리고 사물 인터넷을 통해 이젠 AI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누라폰은 그런 시대로 전이하고 있는 이 시대의 패러다임이 음향 기기에도 적용되고 있는 예다. 물론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누라폰은 이런 개인별 프로파일링을 통해 음향적 개선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사용자에게 돌아갈 수 있는지 당당히 증명해 보이고 있다. 헤드폰의 가장 가까운 미래가 누라폰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여러 혁신적인 기능과 음질을 생각했을 때 가격 또한 가격 대비 성능을 논할 수 있을 정도로 합리적으로 생각된다. 몇 가지 소소한 약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혁신적인 기능과 음질은 이를 모두 상쇄할만하다. 만일 이 가격대 헤드폰을 구입하고 싶다면 꼭 한 번 고려해보길 바란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