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0 시리즈로 우리를 찾아온 귀한 손님 제프 넬슨
Boulder Jeff Nelson
브랜드 명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경우가 있다. 당장 손아귀에 넣을 수 없어도 언젠가는 꼭 써보리라 다짐하는 브랜드는 사실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볼더라고 하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무슨 현대 조각품을 연상케 하는 복잡한 포름에 강력한 카리스마 그리고 엄청난 내구성. 지구상에 못 울릴 스피커가 없는 이 제품에 대한 동경은 비단 필자만이 아닐 듯싶다.
그런데 올해 이상하게도 볼더를 주재하는 제프 넬슨씨와 많이 맞닥트렸다. 지난 8월 홍콩 오디오 쇼에서 보고, 11월 초에 열린 도쿄 오디오 쇼에서도 만났다. 워낙 바쁜 탓에 그냥 손만 흔들고 지나칠 법도 하지만, 일단 만나면 담소를 나누고, 신제품에 대한 정보도 듣는 식의 만남이 이어졌던 것이다.
그러다 이번에 본격적으로 서울에서 자리하게 되었다. 장소는 공식 수입원인 케이원의 회의실. 이제 자세를 가다듬고, 담소가 아닌 정식 인터뷰로 함께 마주하게 된 것이다.
여담이지만, 워낙 신제품 개발에 꼼꼼하고, 완벽주의자인지라, 어떤 질문에는 나도 모르겠다는 식의 답변이 돌아왔다. 묻는 입장에선 답답하긴 하지만 본인이 모른다는 데에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래서 더 신뢰가 가고, 더 기다려지는 볼더인 것 같다. 편의상 제프 넬슨 (Jeff Nelson)씨의 이니셜인 JN으로 표기해서 내용을 정리했다.
인터뷰어: 이종학(Johnny Lee)
인터뷰이: 제프 넬슨 (Jeff Nelson)
- 이렇게 서울에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지난 도쿄 쇼에서 뵈었더니 여전히 바쁘시더군요.
JN : 해마다 도쿄 쇼는 방문하고 있습니다. 벌써 20 년이 넘었습니다. 거기에 요즘 홍콩 쇼까지 추가되어 일 년에 두 차례 꼭 아시아를 방문하는 셈이군요.
- 비행 시간이 꽤 길 텐데요?
JN : 제가 사는 볼더에서 일단 덴버로 가야 국제선을 탑니다. 그런데 직항편이 없어서 늘 L.A.나 샌 프란시스코를 경유해야 합니다. 중간에 연착이라도 되면 훨씬 더 시간이 걸리죠. 그래도 이렇게 직접 방문해서 팬들을 만나는 것이 즐겁습니다.
- 이렇게 한중일 삼국을 두루 다니다 보면 외부인의 입장에서 어떤 차이같은 게 있을 듯싶은데요?
JN : 글쎄요 ... 제 경험만으로 국한지어서 말하면, 일단 중국인들은 손님을 대하는 태도같은 부분에서 확실한 주인 의식이 있다고 할까요? 아무튼 손님이 만족스러워 하는 모습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약간 과시적인 경향도 있습니다. 롤스 로이스나 벤틀리를 사서 외부에 내보인다든지 ... (웃음)
- 그렇군요. 일본은 어떤가요?
JN : 일본의 경우, 제가 처음으로 제품을 수출한 나라여서 개인적으로 애착도 가고, 또 문화적인 배경이 상당해서 배울 점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디테일한 부분이 강해서 우리가 흔히 놓치지 쉬운 부분을 새로 발견하게 합니다. 한국의 경우, 두 나라의 장점이 잘 혼합되어 있다고 할까요? 아무튼 흥미로운 나라임에 분명합니다.
- 그러고 보니 내년에 볼더 창립 30주년이더군요. 이렇게 긴 세월 동안 변함없는 사랑을 받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JN : 아무래도 내구성이 뛰어나고 음질면에서 만족스럽기 때문이라 봅니다. 예를 들어 2000 시리즈를 보죠. 벌써 발표된 지 15년이 넘는데, 아직도 멀쩡하게 쓰는 분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제품 수리를 의뢰해온 경우도 거의 없고요.
- 그러고 보니 볼더의 내구성은 정평이 있더군요.
JN : 두 번째 요소를 꼽아볼까요? 실제로 볼더를 설립하기 전부터 제가 앰프를 설계했으니 올해로 벌써 44년째가 됩니다. 아마도 그런 오랜 경력을 바탕으로 제품을 만든 점이 아마 소비자들이 만족스러워 하는 요인 중 하나가 되겠죠.
- 그럼 그렇게 오랜 기간 앰프를 설계하면서 지켜온 원칙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JN : 이 분야에서 계속 연구하다 보면 많은 정보를 접합니다. 어떤 소재가 좋다, 어떤 서킷이 훨씬 빠르다, 발열 처리에 획기적인 고안이 나왔다 ... 하지만 이런 개별적인 요소에 홀리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전체적인 그림이나 기획을 잡고, 이런 세부적인 요소를 더하거나 무시하는 방식으로 가야 하는 것이죠.
- 일종의 오케스트라를 컨트롤하는 지휘자와 같은 역할이군요.
JN : 맞습니다.
- 2100 시리즈로 말하면, 지난 번 홍콩 쇼와 도쿄 쇼에서 실은 신제품을 봤습니다. 그런데 홈 페이지 어디에도 자료가 없더군요. 이번 기회에 소개해주시죠.
JN : 실은 내년 초에 본격적으로 출시할 예정이라 아직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통해 기본적인 정보를 알려드리죠. 처음 2000 시리즈가 나온 것은 90년대 말입니다. 그 이후 무려 17년 만에 리뉴얼된 제품이 나온 셈이죠. 정식 모델명은 프리가 2110이고, 파워가 2150입니다.
- 흥미롭군요. 3000 시리즈의 파워가 나온 후 곧바로 2000 시리즈의 개량 버전이 나오다니 정말 의외입니다. 실은 3000 시리즈에 필요한 프리앰프가 우선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럼 3000 시리즈의 프리는 아직 준비중인가요?
JN : 솔직히 언제 나올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개발중입니다.
- 알겠습니다. 그럼 2100 시리즈를 살펴보죠. 우선 2110부터 소개해주시죠.
JN : 그 전에 한 가지 밝힐 것은, 저희의 제품 모든 부분이 일종의 인-하우스 개념으로 모두 저희 공장에서 생산된다는 점입니다.
- 그럼 섀시 가공도 외부에 용역을 주지 않는군요.
JN : 그렇습니다. 최근에 작은 용적에 많은 부품을 넣을 수 있는 SMT (Surface Mount Technology) 머신을 들였습니다. 이런 기기를 산 이유는, 앰프의 사이즈를 크지 않게 하면서 효율적으로 원하는 내용을 담기 위함입니다. 이 SMT 머신을 이용한 기판이 2100 시리즈에 본격적으로 쓰였다는 점부터 지적하고 싶습니다.
- 그렇군요.
JN : 일단 게인단은 993S 회로를 사용했습니다. 일종의 OP 앰프인데, 그간 개량을 거듭해서 전작보다 훨씬 디스토션과 노이즈를 줄였죠. 중요한 볼륨단은 밸런스 타입으로 맞춰서 조정할 때마다 발생하는 스텝 노이즈 역시 획기적으로 제거했습니다. 이 모든 게 음질에 좋은 쪽으로 반영되고 있습니다.
- 외관을 보니 투 박스 형태더군요. 별도로 전원부를 낸 모양이군요?
JN : 그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모든 부분을 일종의 아이졸레이션, 그러니까 격리 상태로 구분한 겁니다. 그래서 프리단을 이루는 네 개의 파트가 모두 철저하게 나뉘어 있습니다. 바로 좌우 채널과 로직 및 인터페이스를 담당하는 부분 그리고 전원부죠.
- 내부 사진을 보지 못해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렇게 블록 단위로 나눠서 철제 기구로 나눈다면, 상호 간섭이 현격히 줄어든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합니다. 물론 훨씬 비용이 많이 들지만요.
JN : 심지어는 전원부도 역시 네 가지 파트로 나눠서 따로 공급하게 했습니다. 역시 좌우 채널과 로직 및 인터페이스 부분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탠바이/온 부분입니다. 또 이 모든 것은 새로 설계한 마이크로 프로세서로 컨트롤합니다.
-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하지 않으면 만들지 않는다는 철학에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군요. 그럼 2150 파워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시죠.
JN : 이 제품은 기본적으로 대출력입니다. 채널당 아웃풋 디바이스가 무려 80개나 동원되고, 필터 캐피시터가 48개, 토로이달 트랜스포머가 3개나 됩니다. 그래서 8오옴에 1,000 와트를 내죠.
- 대출력도 대출력이지만, 이 엄청난 기함을 일체의 트러블 없이 운용하는 것이 더 문제라 보이는데, 어떤 대응책을 갖고 계십니까?
JN : 이 앰프를 작동시키는 회로 부분은 클래스 A로 설계했습니다. 그리고 전류가 흐르면서 바이어스 같은 것이 생기면 바로 수정하는 방식을 채택했죠. 참고로 게인 스테이지엔 99H2 서킷을 투입해서 보다 안정적이고, 노이즈를 저감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 대단합니다. 그럼 당분간 신제품 소식은 들리지 않을 수도 있겠군요.
JN : 하나 더 있습니다. 실은 내년 CES에 새로운 DAC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 아, 그렇군요.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 여쭙겠습니다. 볼더 하면 워낙 정평 있는 브랜드인데, 대체 어떤 부분이 장점이라 할 수 있을까요?
JN : 좋은 질문입니다. 우선 제게 멘토와 같은 딘 젠센의 아이디어를 꾸준히 발전시켜서 현재에 이르게 한 기술력을 꼽을 수 있겠고, 전세계 모든 애호가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성능과 퀄리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 그래도 지나치게 신제품 개발이 늦고, 애호가들을 오래 기다리게 하는 점은 아무래도 아쉬운데요?
JN : 물론 그런 마음은 잘 이해합니다. 그러나 저는 오랜 기간 연구 개발해서 어떤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회사가 좀 유명해지면 바로 투자자들을 모집해서 몸집을 키우고, 많은 모델을 양산하곤 합니다. 저희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회사와 공장에 일체 외부 자본의 투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침마다 제가 은행에 보고해야 할 의무가 하나도 없는 것이죠. (웃음)
- 그렇군요. 혹 그렇게 바쁜 와중에 개인적인 취미가 있다면?
JN : 골프와 재즈를 즐깁니다. 지난 번 도쿄 쇼에도 저녁마다 재즈 클럽을 다녔죠.
- 언제나 변함없이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니 좋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JN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