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겨울이 다가오면 오디오파일이라면 누구나 진공관에 눈길이 간다. 추운 몸을 이끌고 집으로 와서 씻기도 전에 진공관 앰프의 전원을 올린다. 샤워를 할 때 필요한 따뜻한 물은 보일러를 틀자마자 금세 나오지만 진공관은 예열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공관이 충분히 뜨거워졌을 때 음반을 하나 올려본다. 마치 발갛게 달아오른 진공관의 모습과 따뜻하게 방 안을 데우는 열기처럼 음원 속 뮤지션의 음악적 열기와 열정이 더 뜨겁게 전해오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는 이처럼 음악 자체와 청각뿐 아니라 이 외의 여러 감각 그리고 심리적인 요소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귀로 듣는 것 외에 눈으로 보는 것과 피부로 느껴지는 온도감까지 음악 감상의 일부가 되어 오감을 자극하는 것이다. 때론 기기의 노브 하나 제품의 알맹이를 감싸고 있는 기구물에 손이 닿는 촉감도 음악 감상에 영향을 준다. 어테뉴에이터가 또르르 걸리며 올라가는 볼륨, 딸깍~하고 오르내리는 토글스위치의 움직임 하나에도 음악을 듣는 느낌이 달라진다.

숨 막히는 속도로 돌아가며 변화하는 급박한 디지털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런 아날로그의 감촉이 주는 여유는 귀중하다. 그중 대표적인 컴포넌트를 꼽자면 역시 진공관 앰프다. 진공관이 개발된 이후 여러 부침을 겪기도 했고 드라마틱한 진보도 있었으나 여전히 진공관은 진공관만의 음질로 승부하고 있다. 전고조파 왜곡이나 SN비 등 앰프의 기술적 성과를 대표하는 스펙에서 평균적으로 여전히 트랜지스터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지만 진공관 앰프를 찾는 사람은 끊이지 않는 본질적 이유다.

AURIS

이런 연유로 갈수록 진공관 앰프를 만드는 메이커는 더 많아지면 많아졌지 절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편 과거 매킨토시, 마란츠 등 몇몇 메이저 컴퍼니가 시장을 휩쓸던 시대가 지나고 군소 규모의 진공관 메이커가 저마다의 회로 설계와 음질적 이상을 가지고 각개 약진 중이다. BAT와 오디오 리서치, 카운터포인트 등 하이브리드 하이엔드 메이커가 군웅할거하던 시절도 지났고 이젠 정말 어떤 트렌드라는 것이 없이 모두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진군중이다. KR 오디오나 압솔라레 같은 메이커의 최신 진공관 앰프를 들어보면 상상도 못했던 음악성에 놀랍다. 때론 옥타브 오디오처럼 트랜지스터 앰프에 버금가는 스피드와 해상력을 갖춘 제품도 마주치게 된다.

그중 독특한 현상이 포착되는데 바로 동유럽 국가들에서 속속들이 등장하는 진공관 앰프들이다. 원래 철의 장막 시절부터 다양한 기술적 전초기지로서 기능했던 국가들이 그 기술적 토양을 토대로 새로운 분야에 흘러들어오면서 그 성과를 인정받기 시작한 것. 그중 세르비아에서 또 하나의 브랜드가 탄생했다. 바로 AURIS라는 브랜드가 그 주인공이다.

Fortino 88

일단 이번에 만난 AURIS의 모델은 두 가지로 하나는 Fortino 88 인티앰프 그리고 또 하나는 Poison 8 스피커다. Fortino 88 인티앰프부터 살펴보면 두 덩어리로 구성된 설계부터 독특하다. 다름 아니라 전원부를 별도의 섀시에 담아 설계한 것. 프리앰프 같은 경우 외장 전원부 설계가 꽤 있지만 인티앰프로 만들면서 굳이 전원부를 분리시킨 형태는 독일 ASR이나 과거 뮤지컬 피델리티 일부 제품 외에 자주 보기 힘들다. 오디오 컴포넌트의 심장과 같은 전원부의 분리는 확실히 성능에 있어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는 기초가 튼튼하다고 할 수 있다.

모델명을 보고 눈치챘겠지만 출력관에 KT88을 총 네 알 사용하고 있으며 이 외에 ECC99와 ECC83 등을 각각 두 알씩 사용해 설계한 모습이다. 입력단은 A 클래스로 설계했고 출력단은 보편적인 AB 클래스 회로로 구성 음질과 증폭 효율을 모두 잡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주파수 응답 범위는 ±1.5 dB 기준 17Hz에서 30kHz 수준. KT88 네 알을 사용, 푸쉬풀 증폭해 얻은 출력은 채널당 70와트로서 4옴과 8옴에 모두 대응하고 있다. 입력단은 오직 RCA 입력단 네 조만 지원하고 있다.

진공관은 모두 직접 선별해 페어 매칭한 후 장착해 출고한다고 한다. 이번에 만난 제품의 경우 평범한 EH(일렉트로 하모닉스)로 보이지만 모두 선별한 것들이다. 참고로 만일 고객이 따로 원할 경우 NOS(미사용 구관)을 장착해주기도 한다고 한다. 내부에 쓰인 트랜스포머가 눈에 띄는데 이는 같은 세르비아 출신 하이엔드 진공관 메이커 트래포매틱(Trafomatic)오디오의 더블 C 코어 타입을 사용하고 있다. 내부 소자의 경우 문도르프, 루비콘, 지멘스, 위마 등 고급 제품들을 사용하는 등 소자도 고급 제품들 위주로 사용한 모습이다.

Poison 8

함께 매칭한 스피커는 Auris의 Poison 8이라는 스피커다. 트위터와 미드레인지 그리고 사이드 우퍼를 사용한 플로어스탠딩 스피커다. 전면 배플이 무척 좁고 미드레인지 사이즈도 무척 작지만 옆면으로 시선을 옮기면 무려 8인치 베이스 우퍼가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또 이뿐만 아니다.

후방으로 시선을 옮기면 아주 작은 트위터가 하나 등에 붙어 있다. 이렇게 후방에서 트위터를 탑재하는 스피커를 가끔 볼 수 있는데 대개 앰비언스를 향상시키기 위한 설계로 볼 수 있다. Auris에선 이른 3D 옵션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고역을 후방으로 방사해 현장의 싱싱한 배음을 뒤로 펼쳐내어 리스닝 룸 안에 유사한 현장감을 형성시키기 위한 대책이다. 이 후방 트위터의 경우는 켜거나 끌 수 있도록 설계해놓아 공간에 따라 조정해듣는 재미가 있다.

리본 트위터는 Fountek의 제품으로 Auris에서 특주한 제품이라고 한다. 우리에겐 영국의 모니터 오디오의 제품에서 볼 수 있었던 것으로 친근한데 전 세계 20여 개 디스트리뷰터를 둔 중국의 유닛 전문 제조사다. 더불어 미드레인지는 이탈리아 특주 제품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정확한 제조사는 알 수 없었다.

셋업 & 리스닝 테스트

Poison 8은 4웨이 설계로 공칭 임피던스가 8옴, 능률이 91dB로 예상보다 제동 자체는 매우 쉬운 스피커다. 아마도 자사 앰프들이 강력한 출력과 힘을 기반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고 진공관 앰프임을 감안해 가장 잘 어울릴 수 있는 타입으로 설계한 듯하다. 내부 크로스오버는 모두 문도르프 등 고급 소자를 사용하고 있고 크로스오버 주파수는 250Hz 및 3500Hz 두 군데서 형성시켰다. 전체적인 디자인이 마치 오디오피직 스피커를 연상시키는데 소리에선 전혀 다른 인상을 주어 흥미로웠다.

김광석 - 이등병의 편지

인생이야기

테스트는 하이파이클럽 제1시청실에서 진행했고 소스 기기로는 웨이버사 시스템즈 W 라우터/W 코어 및 최신 모델인 W DAC3C를 사용해 시청했다. 전체적인 인상은 편안하고 배음이 풍부한 스타일로서 약간 회고적인 느낌도 있다. 예를 들어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 공연 실황 음원을 들어보면 대역간 이물감이 없이 동축이나 풀레인지 타입 스피커에 가까운 소리를 들려준다. 마치 풀레인지 유닛에 고역 보강용 트위터와 저역 보강용 서브우퍼를 추가한 형태처럼 들린다. 보컬은 두텁게 스피커 중앙을 가득 메우며 묵직한 무게감이 돋보인다.

Max Richter

Three Worlds: Music From Woolf Works

어떤 부분에선 마치 오디오피직이 리본 트위터 버전을 만들면 이와 유사한 소리가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어 막스 리히터의 음악을 오랜만에 들어보니 현의 반복적인 보잉이 매우 규칙적이며 정돈된 무대를 만들어낸다. 각 악기들의 소리들이 명료하고 심지가 곧은데 대신 스윗스팟이 극도로 좁다. 청취 위치를 조금만 바꾸어도 악기의 초점이 바뀐다. 대역 밸런스는 중립적인 편이지만 중역이 꽤 두텁고 진해 고역과 상당히 대비된다.

Larry Coryell - Morning of the carnival

Spaces Revisited

스피커에 대한 어떤 사전 정보 없이 듣다가 보면 저역의 울림에 놀라게 된다. 사이드 우퍼는 상당히 커다란 저역 스케일을 가지고 있는데 이 우퍼의 응답 특성과 양감을 고려한 셋업이 이 스피커 운용의 관건이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래리 코리엘의 ‘Morning of the carnival’을 들어보면 낮은 음계가 펼쳐지는 부근에서 저역이 공간을 울리며 상당히 커다란 여음을 남긴다. 한편 중역대를 넘나드는 기타는 매우 농익은 느낌이며 후방의 트위터까지 켤 경우 더 긴 잔향과 풍부한 앰비언스 표현이 돋보인다.

Claudio Abbado, Berliner Philharmoniker

Dvorak: Symphony No.9

전체적으로 Auris 진공관 앰프와 스피커는 절대 차가운 온도감이 없이 따뜻하고 여유로운 느낌의 음색을 가지고 있다. 물리적 촉감도 둥글둥글하며 편안한 느낌을 주어 딱딱하거나 피곤한 기색이 없다. 예를 들어 아바도 지휘, 베를린 필 연주로 드보르작 교향곡 9번을 들어보면 마치 소형 풀레인지 스피커의 고역을 보완하기 위해 투입한 듯한 리본 트위터의 도움으로 음장감을 실현하고 있다. 칼처럼 떨어지는 홀로그래픽 음장은 아니며 약간 평면적이다. 더불어 8인치 대형 우퍼의 도움으로 저역의 커다란 임팩트는 매우 우렁찬 타악 울림을 제공한다.

총평

Auris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꽤 많은 제품군을 갖추고 있는 브랜드다. 진공관 앰프만 일곱 개, 헤드폰 앰프가 세 종,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DAC도 두 개 모델이 있다. 또한 스피커도 이번에 시청한 Poison 8 외에 Poison 4, Poison 88 등 총 여섯 개 모델을 내놓았다. 일부 스피커는 몇 년 전 테스트해본 뵈니케 스피커의 디자인을 연상시키기도 해 흥미를 유발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Auris의 본령은 진공관 앰프다. 이번에 시청한 Fortino 88 외에도 Allegro 그리고 3극관을 채용한 Adagio 2A3, Adagio 300B 등 다양한 앰프가 각각의 출력관을 품고 있었다. 기존 유명 진공관 브랜드에 질렸다면 Auris는 아름다운 디자인과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표면 마감 및 사운드에 이르기까지 오디오파일의 겨울나기에 안성맞춤이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