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회 시청회 EMM Labs NS1 + DA2 후기
스트리밍 재생 환상 듀오, 너흰 계획이 다 있구나
제307회 하이파이클럽 시청회는 DSD 재생의 터줏대감이자 독특한 DA 컨버팅 방식으로 명망이 높은 캐나다 EMM 랩스(EMM Labs)의 NS1 스트리머와 DA2 DAC의 성능을 입체적으로 살펴보는 자리였습니다. 특히 지난해 5월 뮌헨 오디오쇼를 통해 첫 선을 보인 NS1은 EMM 랩스 최초의 스트리머이자 룬 레디(Roon Ready) 플레이어로서 애호가들의 관심이 높은 제품입니다.
DA2 DAC은 PCM은 24비트/192k까지, DSD는 DSD128까지 재생하는 DAC입니다. 이미 여러 리뷰와 하이파이클럽 시청회를 통해 그 성능이 입증된 EMM 랩스의 간판 DAC이죠. 하이파이클럽 제1시청실에서 진행된 시청회에는 웨이버사의 W Router, MBL 6010 D 프리앰프, 브라이스턴 28B3 모노블록 파워앰프, B&W 802 D3 스피커가 동원됐습니다. DAC 비교를 위해 웨이버사의 W DAC3C도 찬조 출연했습니다.
EMM 랩스의 시그니처 : PCM을 DSD 변환한 후 컨버팅
EMM 랩스는 소니, 필립스와 함께 DSD 표준을 세운 디지털 엔지니어 에드 마이트너(Ed Meitner)가 1988년 캐나다에 설립한 제작사입니다. 현재 외국 레코딩이나 믹싱, 마스터링 업체에서 쓰는 DSD 컨버터나 재생장비 대부분은 EMM 랩스 제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참고로 이런 그가 EMM 랩스의 첨단 기술을 담아내면서도 보다 접근 가능한 가격대의 제품을 보급하기 위해 설립한 별도 회사가 마이트너 오디오(Meitner Audio)입니다.
EMM 랩스는 입력신호를 PCM, DSD 가리지 않고 모두 1비트 DSD, 그러니까 PDM(Pulse Density Modulation) 신호로 업샘플링한 후 DA 컨버팅에 나서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1비트 신호인 만큼 뒷단에 아날로그 로우 패스 필터만 걸어주면 아날로그 신호로 변환되는 점을 이용한 것이지요. 그리고 이 DSD 변환 과정에서 업샘플링이 이뤄지는데, DA2 DAC의 경우 44.1kHz 신호의 16배인 44.8MHz(DSD1024)로 업샘플링을 합니다.
이처럼 멀티 비트 PCM(Pulse Code Modulation) 신호까지 1비트 DSD 신호로 바꿔주는 것은 에드 마이트너의 확고한 신념 때문입니다. 그가 여러 인터뷰를 통해 강조했듯이 "아날로그 신호가 디지털 신호로 변환되는 과정(ADC)은 1비트 신호 처리와 비슷하다. 때문에 디지털 신호를 왜곡과 손실 없이 아날로그 신호로 복원하기 위해서는 다시 1비트 신호로 변환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업샘플링 주파수가 높은 것은 업샘플링을 세게 할수록 가청 영역대에 남아있는 디지털 노이즈가 대폭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정경화 - G선상의 아리아
도쿄 라이브 2탄
시청회 1부에서는 본격적인 기기 설명에 앞서 우선 EMM 랩스의 NS1과 DA2 DAC 조합이 어떤 소리를 들려주는지부터 확인해봤습니다. PCM FLAC 파일로 들어본 정경화의 'G선상의 아리아'는 처음부터 마치 LP를 듣는 듯한 진한 색채감과 무게감이 물씬 풍겨 나왔습니다. 밀도감으로 보면 기성 델타 시그마 DAC 칩을 쓴 제품에 앞서고, 무게감으로 보면 디스크리트 R2R DAC과 유사합니다. 무엇보다 음과 무대의 질감이 잘 느껴진다는 점에서 PCM 신호를 1비트 DSD로 변환한 후 컨버팅에 나선 EMM 랩스의 DAC 아키텍처가 돋보인 곡이라 하겠습니다.
Rebecca Pidgeon - Auld Lang Syne/Bring It On Home To Me
The New York Girls Club
레베카 피전의 '올드 랭 사인'은 먼저 DSD64 음원으로 들어봤는데, 내레이션이 귀에 착착 감기고 보컬은 매끄럽고 깨끗하며 윤기가 좔좔 흐릅니다. 전형적인 DSD 음원의 소릿결인데 이를 44.8MHz로 업샘플링한 덕에 그 정도가 더욱 업그레이드된 듯합니다. 전체적으로 미끈하고 예쁘며 자연스러운 소리였습니다. 이어 24비트/96kHz 스펙의 PCM 음원으로 들어보면, 약간 성기고 음 자체가 얇아졌지만 소릿결의 질감은 DSD 음원에 비해 더 사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DSD 음원이 보드라움을 강조했다면 이 PCM 음원은 앰비언스가 더 두드러졌습니다.
NS1 : EMM 랩스 최초의 스트리머
지난해 5월 독일 뮌헨 오디오쇼에서 공개된 NS1은 유선 랜을 통해 타이달과 코부즈, 스포티파이, 디저, 인터넷 라디오(vTuner)를 스트리밍 할 수 있는 스트리머입니다. 전용 앱은 없지만 mConnect 앱을 통해 이들 스트리밍 서비스를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로 컨트롤하고 재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룬 레디 인증을 받았기 때문에 룬 코어 서버를 갖추면 룬 리모트 앱으로 룬의 세계를 편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이 밖에 UpnP/DNLA 및 USB 스틱 플레이도 지원합니다.
그런데 후면을 보면 디지털 출력 단자로 AES/EBU와 광 단자, 그리고 EMM Optilink(옵티링크) 단자만 있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보통의 스트리머에는 다 있는 USB-A 단자와 동축 단자가 없는 것이지요. USB-A 단자가 2개 있기는 하지만, 이는 USB 파일 플레이와 와이파이 수신 모듈 연결을 위한 용도입니다.
따라서 인터페이스만 놓고 보면 NS1은 옵티링크 케이블을 이용해 자사 DA2 혹은 DV2 DAC에 연결할 경우 제 실력을 100% 뽑아낼 수 있는 스트리머입니다. AES/EBU나 광 출력도 가능하지만 옵티링크 케이블로 연결할 경우 음질이 더 좋아짐을 이번 시청회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NS1에 RS232 포트를 마련한 것도 DA2 혹은 DV2 DAC과 연결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덕분에 시청회 내내 DA2 DAC 디스플레이에는 스트리밍 정보가 표시됐습니다.
EMM Optilink vs AES/EBU
과연 EMM 옵티링크 케이블과 AES/EBU 케이블 사이에는 음질 차이가 있는지 비교 테스트를 해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옵티링크 케이블로 DA2 DAC에 연결했을 때 음질이 더 좋았습니다. 맞 비교한 AES/EBU 케이블이 400만 원대, EMM 옵티링크 케이블이 30만 원대인 점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차이입니다. 일반 광케이블 연결 시 자주 포착되는 다이내믹스 열화 등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EMM 랩스에서 강조하듯이, 옵티링크 케이블의 입출력 단자에 갈바닉 절연(galvanic isolation)이 이뤄져 각종 외부 노이즈가 단자와 단자를 통해 뒷단으로 넘어가지 못한 덕분으로 보입니다. 갈바닉 절연은 회로 간에 전기적 연결 없이 신호가 전송되는 상태로, 대표적인 것이 흔히 포토커플러라고 부리는 옵토 아이솔레이터(Opto-Isolator)입니다. 이에 비해 AES/EBU 케이블은 송수신 측에 RS422 라인 드라이버와 리시버를 사용한 110옴짜리 밸런스 케이블입니다.
Henry Mancini - The Pink Pather Theme
This Is Henry Mancini
기준점을 잡기 위해 먼저 '웨이버사 W Router + USB 케이블 + W DAC3C'로 들어봤습니다. 하이파이클럽 시청회에서 자주 듣던 익숙한 소리입니다. 이후 'NS1 + AES/EBU 케이블 + DA2 DAC'으로 들어보면, 에너지감과 무게감, 밀도감이 더 늘어난 것 같습니다. SN비와 해상도도 더욱 늘어난 듯합니다. 이는 물론 W DAC3C와 DA2 DAC의 가격차를 감안하면 '불공정 게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어 'NS1 + 옵티링크 케이블 + DA2 DAC'으로 들어보면 AES/EBU와 옵티링크 케이블의 음질 차이가 확연합니다. 선명함과 다이내믹 레인지, 재생음의 생기와 탄력감, 디테일이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투명하고 깨끗한 무대도 돋보였습니다.
DA2 : 44.8MHz 업샘플링 및 DSD 변환 DAC
DA2 DAC은 PCM은 24비트/192kHz까지, DSD는 DSD128까지 재생하는 DA 컨버터입니다. 물론 EMM 랩스의 DAC답게 입력신호를 업샘플링한 후 1비트 DSD로 변환하는데, MDAT2(Meitner Digital Audio Translator 2)라는 DSP에서 PCM/DSD 신호를 모두 44.8MHz로 업샘플링합니다. EMM 랩스에서 MDAT2를 '16 x DSD Translator'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업샘플링된 신호는 이후 1비트 DSD로 변환한 후 아날로그 로우 패스 필터를 거쳐 최종 아날로그 신호로 바뀝니다. 이를 담당하는 모듈이 MDAC2(Meitner Digital to Audio Converter)입니다.
DA2 DAC에는 또한 에드 마이트너가 개발한 비동기 지터 제거 기술인 MFAST(Meitner Frequency Acquistion System Technology)와 고정밀 클럭 MCLK2가 투입됐습니다. NS1에 외장 클럭 연결을 위한 BNC 단자가 없는 것은 그만큼 스트리머 내장 클럭의 성능에 자신이 있고, 뒷단인 DAC에서도 비동기(asyncronous)로 작동하는 고정밀 클럭이 버티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터페이스를 살펴보면, 디지털 입력단으로 NS1 등과 연결할 수 있는 EMM 옵티링크 단자를 비롯해 AES/EBU, USB-B, 동축(2), 광(2) 단자가 마련됐습니다. 자사 NS1뿐만 아니라 타사 스트리머나 PC 등과 폭넓게 연결할 수 있는 셈이죠. 아날로그 출력 단자는 XLR, RCA 1조씩 갖췄는데, 출력 임피던스와 레벨은 XLR이 300옴, 4.6V, RCA가 150옴, 2.3V를 보입니다.
Brian Tyler,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 Iron Man 3
Iron Man 3 OST
처음부터 엄청난 다이내믹스가 펼쳐집니다. 무엇보다 높은 음량에서도 해상력을 잃지 않는 모습이 대단하네요. 가슴을 저격하는 음의 펀치감은 극장 사운드 그 이상인 것 같습니다. 룬(Roon)을 통해 코부즈 음원을 스트리밍한 상태인데, DA2 DAC 안에 들어간 MCLK 2 클럭이 마스터가 된 덕분에 어느 곡을 들어도 일관된 소리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어 글로밍의 'The Pilgrim's Song'을 들어보면, 악기의 질감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해상력과 색 번짐이 없는 깨끗한 윤곽선이 돋보입니다. 에너지감과 경쾌함을 동시에 갖춘 그런 음과 무대였습니다.
본격 시청
Eiji Oue, Minnesota Orchestra - Fanfare for the Common Man
Copland 100
템포 면에서 아귀가 딱딱 맞는 느낌이 들며, 음의 윤곽선은 매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무대의 공간감과 스케일도 만족스러운 수준입니다. 802 D3에서 보다 대형기 느낌이 도는 점도 특징입니다. 이어 마이클 스턴이 캔자스시티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생상스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Saint-Saens Symphony No.3)를 들어보면, 음 사이사이에 빈틈이 없고 트랜지언트 특성이 좋아서 그런지 뒷맛이 아주 개운합니다. 지저분한 잔상이 전혀 남지를 않습니다.
Oscar Peterson Trio - You Look Good To Me
We Get Requested
트라이앵글이 주도하는 마이크로 다이내믹스가 대단합니다. 트라이앵글이 언제 등장하더라도 순간순간적인 임팩트와 디테일이 묻히지 않습니다. 베이스의 저역이 시청실 바닥에 잘 처박히고, 피아노의 고음이 매우 리퀴드하게 들리는 점도 이번 NS1 + DA2 DAC 조합을 관통하는 특징인 것 같습니다. 드럼의 스톱 앤 고도 확실하네요. 그만큼 소스 기기들의 톤 밸런스가 잘 이뤄져 있고, 배음 정보를 잃지 않은 덕에 각 악기의 음색이 리얼하게 표현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Jacintha 'Moon River'(Autumn Leaves)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리겠다 싶을 만큼 정숙한 배경이 돋보입니다. 녹음 공간의 잔향감이나 피아노 연주의 디테일도 잘 관찰됩니다. 한마디로 '숨어있던 소리를 잘 끄집어내는' 소스 기기 조합이라 할 만합니다. 이 곡의 또 다른 백미인 피아노 솔로 연주에서도 특히 오른손 연주음이 맑고 고우며 투명하게 들립니다. 무엇보다 야무지고 똑 부러져서 흐물흐물하지 않게 들리는 점이 대단합니다. 이 밖에 음에서 약간의 온기가 감도는 점도 눈에 띕니다.
정명화 정명훈 - 성불사 주제에 의한 변주곡
한(恨), 꿈, 그리움
처음 들려오는 물소리와 이어 등장한 풍경과 종소리의 리얼리티가 장난이 아닙니다. 그냥 나무 향 가득한 숲속 한가운데에서 가만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것 같습니다. 첼로의 저역은 사정없이 시청실 바닥을 향해 처박히는데, 그 굵게 떨어대는 현의 움직임에 온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가공할 만한 음의 습격이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긴장감을 주면서도 음들이 앞으로 쏟아지지 않는 점도 대단했습니다.
시청회를 마무리하며
EMM 랩스가 NS1 스트리머를 내놓은 것은 시기적으로 약간 늦은 감이 없지 않습니다. 그리고 USB 출력은 물론 동축 출력까지 지원하지 않는 점은 의외라면 의외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시청회에서 DA2 DAC과 옵티링크 케이블로 연결해 들어본 스트리밍 음원은 AES/EBU 케이블보다 몇 수 위의 음질을 선사했습니다. 또한 RS232 포트로 연결한 덕에 DA2 DAC 디스플레이에 스트리밍 음원 정보가 표시되는 점도 솔깃했습니다.
DA2 DAC은 그 소릿결의 섬세함과 에너지감, 무대의 스케일에서 역시 웰메이드 DAC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입력 신호를 1비트 DSD로 변환하고 그 과정에서 44.8MHz로 업샘플링하는 에드 마이트너의 독특한 DAC 아키텍처가 빛을 발한 것 같습니다. 이 DAC에 NS1을 붙인 것은 그야말로 기다렸던 날개가 활짝 펴진 듯합니다. 시청회 내내 아카데미 4관왕을 수상한 '기생충'의 명대사가 계속 떠올랐던 이유입니다. "너희는 계획이 다 있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