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빈 콘체르트하우스!!!
2002년 가을
제가 강의하던 강남의 한 음악감상실 진뮤직갤러리에
이순열 선생님을 모시고 특강을 들은 적 있습니다.
우리나라 1세대 음악평론가 중에 최고의 공력과 필력 또한 진실과 정의가 가장 충만하시던 분!
1988년 카라얀의 마지막 내한공연때
칼 라이스터를 단독 인터뷰해
카라얀이 원숭이라는 말을 끄집어내게 한 장본인...
모든 언론이 그때 카라얀을 맹목적으로 신처럼 받들때
오직 이 분만이 공연리뷰에서 진실을 짚어주었던 분!!!
이분의 강의 한마디한마디는
제게 생명의 양식 같은 단비를 내려주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죠...
제 글은 정말 애들 장난같습니다.
되지도 않는 잘난체와 말장난만 늘어놓는
일부 음악평론가, 음악칼럼니스트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지식의 바다와 지혜의 샘물에서 떨어지던 그분의 강의...
그런 그 분께서 한 장의 음반을 들고 오셨습니다.
바로 빈 콘체르트하우스 사중주단이 연주한
베토벤의 중기 사중주의 걸작
제10번 E플랫장조 작품74 <하프> 입니다.
1악장에서 피치카토가 많이 나타나는데 그래서 하프라는 부제가 붙은 것이구여...
이순열 선생님은 4악장을 들려주셨지요...
하프 사중주는
개인적으로 베토벤의 모든 현악사중주 가운데
가장 시적이고 로맨틱한 곡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요즘 같은 가을에 듣기에는 제격!
4악장은 베토벤의 모든 사중주 악장 가운데
유일하게 변주가 붙은 악장이라고 악장 기호에 쓰여있지요.
Allegretto con Variazioni
1개의 주제와 그 주제에 옷을 갈아입혀 6개의 변주로 이끌어가는데...
아!
제가 들어왔던 다른 음반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
베토벤이 느긋하게 산책하며 자연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
아님 속깊은 중년 남성이 모처럼 사랑하는 부인에게 밀어를 던지는 모습!
우선 템포가 다른 연주단체와는 확연히 다르게 느린 것이었습니다.
첫 변주의 스타카토의 농밀함은 너무도 인상적이었구요...
확 바뀌어 레가토로 일관하는 2변주 등등등...
첼로의 오르겔풍크트(오르간처럼 뒤에서 저음으로 받쳐주는것) 아래 마치는 6변주에서
마침내 저는 눈물을 떨구고 말았습니다.
후기 현악사중주가 최고라던 제게 이처럼 아름다운 중기의 걸작이 있었다니요!
하긴 베토벤 사중주가 걸작 아닌 곡이 있겠습니까?
그 연주단체가
바로 빈 콘체르트하우스 사중주단이었습니다.
1950, 60년대 황금기를 구가하며
아득히 먼 나라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오직 음악 하나로만 이야기하며
일체의 세속적인 허식과 과장, 그리고 화려함을 추구하지 않았던...
마치 된장같은 냄새를 풍겨주었던 그들!!!
하지만.
그뿐이었습니다.
음반은 이미 절판된지 오래였고...
5장 전집으로 잠시 묶여나왔던 것도 때를 놓쳐 입수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저는 슈스케 사중주나, 탈리히 사중주, 보로딘 사중주 같은
그나마 소담한 악단의 연주로 속을 달래야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빈 콘체르트하우스 사중주단의 음반 원본을 가지고 있는
웨스트민스터레이블에서
전집으로 59장의 음반이 한정반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눈이 번쩍 띄었습니다.
거기엔
바로 제가 그토록 10년 동안 찾아헤메었던
하프 사중주가 수줍은듯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뿐이 아니라
후기현악 사중주까지...
슈베르트, 모차르트까지!!!
그야말로 보석을 발견한 셈이었고,
지난 10년 동안
가장 횡재한 음반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레이블은 신비의 레이블이었습니다.
워낙 레어 아이템이었고
가격도 비싸고
특히 레오폴트 블라허가 연주한
브람스의 클라리넷 오중주와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오중주는
아직까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반 중의 명반이기도 하지요...
가을입니다.
실내악은 가을이 제격이고
특히나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느린 실내악이야말로 최고의 선물이자 치유라고 생각합니다.
올 가을!!!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 하프 가운데
4악장을
빈 콘체르트하우스 사중주단의 연주로 들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플루티스트 최나경씨가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플루트 수석으로 들어가서
우리 음악계의 쾌거를 일구었지요?
빈 콘체르트하우스 사중주단의 숨결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빈 심포니와 빈 콘체르트하우스!!!
아래 사진은
빈 콘체르트하우스의 외관과 공연장면입니다.
무지크페라인잘과 함께 최고의 음향을 가진 환상적인 공연장입니다.
내년 1월1일 저녁7시에
이곳에서
파비오 루이지가 지휘하는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들으러 갑니다.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무대에 최나경님이 플루트 수석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빈 콘체르트하우스 사중주단이 매번 연주했던 바로 그 장소!!!
이래저래
올가을에는
빈 콘체르트하우스 병에 걸릴 것 같습니다.
추석 오고가시는 길에
빈 콘체르트하우스 사중주의 연주를 들으며 운전하시는 건 또 어떨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유혁준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