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일기.7

서재엔 source기준으로 몇 계통의 소리내는 방식이 결합해 있다. 아이튠즈로 리핑을 해 재생하는 형식이 맥과 윈도우 두 계통이 있고, 아날로그 재생시스템이 있으며, 피시를 통한 방송국의 음악채널이 꽤나 유용한 수단이 되고 있는 가운데, 위성방송에서 제공하는 다채널의 음악소스는 거의 횡재에 가까운 샘물이다.

한데, 요즘 가장 오랜 시간 큰 비율로이 내 벗이 되어 주는 건 티볼리 라디오와 오디오엔진 A2미니 스피커로 운용하는 KBS 라디오 클래식 방송이다. 이유는 편해서다. 라디오 자체에도 앰프부와 모노스피커가 있어 소리를 내지만, 소구경 모노스피커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어 나름 좀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았는데, 아날로그 신호를 마이크로폰 잭으로 빼내 액티브스피커인 A2의 프리입력에 넣고서, 메인스피커 위에 올리고 황동 콘 3개씩을 받혀 약 2미터 간격을 벌려 얹었더니…이게 음색이 군침을 돌게 하는 점은 말할 것도 없고 소위 음장이 나오는 게 아닌가?!!^^ 물론,당연히, 쿵쿵거리며 지축을 울린다거나 하늘 끝간 데를 모르게 쭉 뻗지 는 않으며 때로 날씨 좋지 않거나 할 경우에는 아날로그 전파 픽업시스템 특유의 잡음이 귀를 거슬리게도 하지만, 귀 어두운 초로의 음악생활엔 충분하다 못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하루 종일 틀어 놔도, 소리에 부담 없으며 전기도 얼마 들지 않고 노브를 돌리자 마자 소리가 튀어나와 손 쉽기가 이를 데 없으니, 진정한 벗이 아니겠는가.

놀게 되어 시간이 많아지면, 까만 엘피 판을 정성스레 극세사 물수건으로 닦아 턴테이블에 올려 놓고 스태빌라이저로 무게를 주어 플레이를 시켜야 하는 아날로그 재생시스템과 씨름할 기회가 많아지리란 애당초의 기대는 물 건너 간 게 아닌가 싶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가운데, 수천의 음반은 그렇지 않아도 비좁은 집안 가용공간의 불청객에다 이사할 때 골머리를 앓게 만드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판인데, 하나 하나에 묻은 손때와 추억을 생각하면 계륵이라 이름 붙이기도 그렇고…그저 가끔 그래 예전엔 이 방법밖엔 없었지…하며 큰 맘을 먹고 한 두어 장 얹어 눈 지그시 감고 들어 보며 추억을 반추하는 옛 사진첩 같은 존재, 버릴 수는 없고 그렇다고 매일 꺼내 보지도 못하는 그런 애매한 물건이 되어 가고 있다. 맥미니로 재생하는 방식조차도 번거로와 피시에 아이튠즈를 깔아 아마라도 걸지 않고 들으면, 약간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따지고 보면 그게 그 소리라, 이쯤 되면 오디오 파일을 자처했던 지난 세월에 대한 배신일 수도 있지만, 사람의 귀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진실이 불편할 나이는 지났으니 이로써 자위를 하는 게 아닐까…

내자와 나의 기타는 각기 동일한 공방에서 제작한 300호들 인데, 탄현을 해 소리를 들어보면 약간의 음색차이를 보인다. 내 물건은 지판이 위로 튀어 나온 업라이징보드이고내자의기타는보편적설계인데, 앞 뒤판과 옆판 그리고 칠, 넥의 목질 등은 같은데도 현장이 10미리가 짧은 내자의 물건은 소리가 울림이 깊으며 음색이 약간 어둡고 내 물건은 밝고 화사한 느낌이 강해, 앞으로 협주를 하게 되면 묘하게 소리가 어울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가진 건 시간밖에 없어 기타나 껴 안고 세월을 보낼까 마음을 먹지만, 한 시간만 자세를 취하고 보면대를 대하고 있으면 손가락 마디와 끝이 화끈대고 허리는 비명을 지르며 어깨가 내려 앉는 고통의 시간이 함께 하는데 휴대폰 앺인 메트로놈을 틀어 놓고 줄을 퉁기다 보면 마음은 바쁜데 손가락은 갈 길을 잃고 허둥대니, 과연 끝이 없는 험로다.

티볼리 라디오는 벌써 두 시간 째 바이올린으로부터 시작하더니 지금은 돌고 돌아 슈베르트/빌헬름 켐프의 피아노가 울려 퍼지고 있다. 소싯적부터, 음악에 대한 수용성-감수성-은 타고 났는지 이론적 학습이나 연주경험이 별로 없었는데도 클래식이 지겹고 어려운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고 오디오에 관심을 두고 근 사십년 세월을 보냈는데, 귀 어두워지니 이제 음악이 좀 들리는가 싶다. 라디오소리를 개선시키기 위해 골몰할 날이 다시 오지 않으리란 장담을 할 순 없지만 나이 60에 이르러 겨우, 가까스로, 음악이 나오면 소리를 먼저 듣지 않게 된 것 같아 참으로 다행스럽다.

내자와 두 시간여 걸은 아침 뒷산엔 봄이 완연했다. 이제 해가 서산에 걸려, 서재 앞 창 쪽 좌측 아파트 건물 벽을 환하게 씻어 내리고 있는 햇살이 눈부시다. 놀 수만 있다면 노는 게 참 좋다.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