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일기.9
명절은 잘 보내셨죠?^^ 새해 복 많이들 받으시고 내게도 좀 나눠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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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가 내려 어둑한 월요일 오후네시.
명절 연휴-내게는 ‘휴’라는 글자가 의미없는 상황이지만-가 남긴 부산함이
아직 시내의 도로에 흔적을 남기고 있는 가운데 지도 한 장을 사러 영광도서에 들렀다.
부산광역시 전도!
암스테르담기타트리오가연주하는비발디의‘사계’가 나의 조그만 오두막에 흐르고 있다.
# 설날아침,
삭풍이 옷깃을 감아 쥐게 하던 시간에 주차공간을 찾지 못하여
멀리 떨어진 곳에 차를 어렵사리 세워 놓고 걸어 산동네 본가로 헉헉대며
올라 가면서 언 코끝의 고통 대신 옛 생각이 머리를 채웠다.
부산범일동지금의현대백화점부지에서태어난날로부터, 정확히 58년3개월이 흘렀다.
기억이 흐리긴 하나, 막 세상을 인식하기 시작하던 초등학교 입학 무렵의 내가 살던
동네 모습을 반추해 보면 간혹 박물관이나 특별사진 전시회 등에서 젊은 관람자에게
먼 나라의 모습처럼 비칠지도 모를 흑백의 바랜 사진으로 남은 그 시절 그, 풍경, 이랄 것도
없는 삭막했던 그 장면 장면이 애잔함으로 떠 오른다. 참 많이도 변했다. 내 고향 부산도…
그오랜기억속에남은모습들이, 부서지고 흩어진 그 편린들이 아직도 어딘가에 몸부림치며
살아 남아 있을까…아니면, 까마득하게 먼지가 되어 흐려진 내 기억처럼 역사의 서랍장으로
증발하여 버렸을까…찾아 봐야겠다.
# 지난가을에, 어깨에 짊어지기에 너무 무거운 캐논 5D와 12-24,24-70,70-300mm 렌즈 셋을
몽땅 팔아 버리고 그 돈으로 장만한 소니 미러리스 바디와 18-200mm렌즈의 새털처럼
가벼운 조합은 칼바람 부는 설날 아침의 부질없는 생각과 이제 결합하게 생겼다.
부산광역시 전도는 권역 별로 잘게 구획되어 그 한 조각 한 조각이 앞으로 꽤 오랜 기간
아침의 내 행선지가 될 터이다. 옛 기억 속의 지워진 퍼즐조각을 채워 그림을
완성하는 일이 되거나, 더 나아가 땅 밑의 기와 파편이 역사를 다시 살려 내듯 결락되고
왜곡되었을 내 기억을 온전하게 되돌려 놓은 작업의 재료가 될 터이다.
우리의일상은, 순간에 집중하고 몰두하는 경우가 손에 꼽을 정도이고 사물의 표면을
스쳐감에 익숙해 있다. 이면을 꿰뚫어 내는 통찰이 설 여유와 기회가 매우 드문 삶을
사는 게 필부들의 일상이다. 사실 사진기의 뷰파인더나 디스플레이를 들여다 보는 일은,
시선의 심도를 깊게 해 준다는 점이 가장 의미 있는 요소일 것이다. 골목 하나 하나
찬찬히 흥미롭게 들여다 본다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고 얼마나 기막힌
사연들이 흙벽 한 쪽, 문짝 하나에 깃들어 있을지… 나는 그 들을 읽을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 눈감 으면 대로와 이면도로 그리고 골목길들이 얽히고 설킨 비정형의 전형이자 동시에
대도시인 부산의거의 모든 복잡다단한 모습들이 떠오른다. 구역마다 변해 가는 모습들의
차이는 비스듬히 절벽위로 치 솟은 고대 지층의 무늬처럼 시간의 또 다른 표현임을
알게 해 줄 것이고, 수 십층 고층빌딩의 뒤 켠에 아직도 납작 엎드린 피난시절의
판자촌이 엄존한 그 대조가 앞 바다의 넘실대는 파도처럼 세월의 파형으로 내게
실감 있게 다가 올 것이다.
내 고향 부산의 행정구역상 면적은 대략 650km square이다.
가로 세로 1km의 조각이 650개 가량이란 얘기이고, 인근 지역까지 포함하면 1
,000개에 못 미치지 않을 것이다. 1km사방의 구역을 샅샅이 훑어 내자면
한 나절이 걸릴 것이고, 그러면 산지가 많은 부산지역임을 감안하더라도
도시 전체와 그 인근의 표정을 다 파악해 내자면 한 2년은 걸릴 거다.
할 일이 생겨 좋지 않은가? 작품으로서의 사진은 난 잘 모른다.
사진 한 장에다 심미적 요소와 철학을 담아 내는 일은 애초부터 치지도외다.
그냥 한번 담아 보는 거다.
# 내일, 날이 맑으면 내 태어난 자리…
초등학교 5학년에 철로변 동네가 철거되면서 떠났던 그 자리,
지금은 높다란 백화점 건물이 들어서 버려, 내가 혹 유명인이었다면
‘누구누구의 생가’라는 타이틀이 붙었을 목조 이층건물이 서 있던 흔적조차 지워진,
사라호 태풍 때 지붕이 날아가 버려 다시 지붕이느라고 고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그 집 터 일대,
내게는 창세기적인 그 동네로 카메라를 들고 가 봐야겠다.
당연히, 이제는 머리카락 조차 다 빠져버린, 그래도 그 시절 나름 동네 신동이라고
불리었으나 한편 왜소한 체격의 꾀죄죄하며 눈에 뛰지 않게 내성적이었던
꼬마를 지금 기억하는 이는 아마 살고 있지 않을 게다.
다섯살 때 집 앞 전봇대 옆에서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뽀뽀를 나누었던,
지금 이름만 기억나는 내 여친?^^ 영희-성은 밝히지 않기로 하자-가 아직
그 동네에 산다 한 들 어떻게 날 알아볼까…
# 바퀴달린 모형 비행기를 몰고 돌아다니는 사진사가 찍은 내 여덟살때-1961년도로 기억-
사진이 내가 가진 가장 오랜 그 동네의 기억으로, 흑백에 내가 살던 집 판자 벽과
내가 탄 모형비행기 그리고 비포장의 흙 바닥 길이 그 사진을 구성하는 전부이고,
연전에, 가지고 있는 수 천장의 옛 사진을 스캐너로 디지털파일화 할 때
가장 오랜 색인이 붙은 사진이다. 그 자리를 찾을 수 있다면…
비슷하게나마 그 자리를 기억해 낼 수 있다면…
52년이 지났으니...
# 작업이 끝을 볼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뭔가 해 놓으면 또 생각이 꼬리를 물 테지!
소일거리가 없어지니 별 생각이 다 나나 보다.
어차피 인생은 즉흥과 우연으로 점철된 게임이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재즈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