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변일기.20
다시 월요일이다.
엊저녁 심술궂은 초겨울 비에 은행닢이 젖어 길바닥을 덮었다.
노란 모자이크의 멋진 정경을 빗자루들이 마찰음을 내며 부수고 있다.
황금빛 아스팔트를 달리는 내 차의 엔진음이 정겹다.
아침 일찍 아내 그룹전 전시 준비 때문에 시청 갤러리에 잠시 다녀 와,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컴퓨터와 마주한다. 모니터 바로 옆
오디오엔진 A2미니컴퓨터용 스피커에선 베토벤선생의 후기 사중주곡이
텅 비다시피한 거실의 공기를 진동시킨다. 소리를 들으니, 중후장대한
오디오기기에 연연하던 지난 세월이 다 부질없다^^ 아이튠즈로 축약한
파일이건 오리지날 CD음이건 음악으로 이해하고 느끼기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한 2년 첼로를 만지고 그 후 2년 클래식 기타와 함께 뒹굴어도 보아 악기 원음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나니 어차피 오십보 백보다.
엊그제 서재 책상을 치워 버리고, 잡다히 연결되고 부속되었던
물건들을 버리거나 합쳐 그야말로 음악실 전용으로 바꾸는 작업을
부지런히 반나절 만에 해치운 결과가 허벅지 근육통과 어깻죽지의
한기로 남았다. 거의 보이지 않던 나무바닥이 많이 나타나고
전면엔 무쇠받침대에 얹힌 하베쓰모니터 30의 단아하고 소박한
자태만으로 그림이 그려지고 나니 이제는 그래도 몇 사람
무릎 맞대고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겨 후련하고 시원하다.
그것이, 거실, 아내의 책상위에 내 컴퓨터가 함께 올려 져 있는
까닭이고 귀 옆에서 오디오 엔진 스피커가 소리를 내는 까닭이다.
채움보단 비움이 와 닿는 때문인가?! 합체보단 해체의 미학인가?
뼈와 근육이 약해지고 중력을 버텨낼 체력이 점점 쇠잔해가는
때문인지 가볍고 작은 물건이 어여쁘다.
해독주스 한 잔으로 가름한 탓으로 이른 허기가 찾아 왔으나,
이 아침의 한적을 틈타, 기타나 퉁겨 뱃속의 허전함을 채워야 겠다.
요즘 연습하는 곡은 푸치니의 아리아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O mio babbino caro’의 기타 편곡판이다. 생초보로 근 2년간
쉬엄 쉬엄 만져 온 악기라 아직도 1프렛에서 12프렛을 넘나드는
손가락에 쥐가 나려는 판국이지만 한 곡 한 곡 페이지를 넘길 때 마다,
음악 듣는 일하곤 또 다른 감흥을 준다. 오디오가 따로 없다.
잠깐이면 지나갈지라도 나는 지금이 참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