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변일기.31
비가 내린다. 밤 사이 시작됐나 보다.
여객선 침몰사고로 가족을 잃은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자괴감으로 목이 화끈거린다. 사고가 났단 소식을 들은 즈음에,
어쩔 수 없이 떠나 열흘 있다 돌아 왔는데도 아직 겉수습 조차 끝나지 않았다.
아직 우리 사회는 많이 멀었다. 도처에 억울한 죽음이다.
눈에 보이는 모습만이 아니라 속에서 돌아가는 시스템도 곳곳에 암초다.
3천 킬로미터 넘어 버스를 타고 돌아 다녔지만 과속하는 차량
거의 발견할 수 없었던 며칠 간의 기억이 아침부터 기운 없는 손으로
신문을 펼치는 나를 다시 분노케 한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랴.
다 내 책임들인 것을. ‘우리 책임’이라고 부르지 말자. 그래서는
또 다시 아무의 책임도 아닌 게 되어 버리고, 어처구니 없는 죽음의
사신은 우연을 가장해 내게 덮칠 테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는 법이다.
사소한 법규 하나쯤이야 까짓 거 ‘지키면 손해’라는 인식이 만연한
이 사회구성원들의 고질적 습속이 수백 명의 ‘희생’으로 나타났다.
사소함 여부를 판단하는 의식은 횟수가 거듭 될수록 이성의 마비를
가져와 점점 잠재적 폭발력이 큰 범법행위조차 사소한 문제로
여기게 되는 중독성이 있는 것이니. 이래서는 우리 개인의 목숨을
잘 조직된 사회체계의 울타리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야생에
팽개쳐진…그래서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으면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
야생동물의 삶과 다름없게 만들었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어처구니 없고 안타까운 수백명의 ‘희생’으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정신을 차릴까? 잘 잊어 버리는 우리네의 허술한 기억력의
또 다른 희생이 되지나 않을까. 과거 겨우 몇 십 년 전에 전쟁을 겪고
수백 수천의 대형사고를 겪은 사회가 어찌 이다지도 허술하며
비이성적이고 중구난방인 걸까. 남 탓 하지 말고 내 종아리 스스로
회초리를 내려치는 마음으로 제대로 반성하고 이번에야말로
외양간을 제대로 고쳐내자. 그래야만 최소한이나마 이 나라에
희망이 있을 것 아닌가.
실종자들의 조속한 생환과,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