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변일기.32
그 것은 분노일 것이다.
근 한 달 내 속에서 내 스스로를 물고 늘어진
뚜렷하지 않은 그 무언가 말이다.
매일 매시간 수많은 사건 사고의 씨앗들이 잉태되지만 확률로 승부하는
생물계의 체계처럼 많은 필터링을 거치고 살아 남은 소수의 잔존물이
대형사고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와 우리를 곤경과 공포 속에 빠뜨린다.
세월호 사건도 아마 ‘OO만 하지(일어나지) 않았다면’ 이란 ‘실패한
필터링 단계가 수십 가지 될 테다. 탐욕적 이기심과 안전 불감증
그리고 문제해결에 무능한 사회정치시스템이란 바탕 하에, 직접적으로는
그 회사와 구성원의 무사안일과 과실 그리고 미필적 고의가 틀림없는
범죄행위의 결합에서 300이 넘는 인명의 억울한 희생이 초래된 것이다.
이런 패턴은 사람의 역사에 다반사이고 어제 오늘의 일만이 아니다.
다만 그저 이번엔 내 차례가 아니었을 뿐.
가족 잃은 사람들에 대한 연민에 그칠 우리의 내적 성찰 수준에 미루어
장담하건대 오래지 않아 이번 사건도 꽤 철저하게 대중의 기억으로부터
잊혀질 것이고 유사한 또 다른 대형 사고가 우리를 지금처럼 분노케
할 날이 없으리라 누가 보장하겠는가. 매뉴얼도 없고 지키지도 않는데!
허공에 대고 우선 핏대를 세워가며 당분간 침 튀기며 악쓰다 말겠지.
이번 사고조차, 생리식염수로 주사 한방 맞은 데 불과한 것처럼
따끔하지만 별로 병에 도움될 건 없는 허탈한 과정으로 마감되리란
내 느낌이 틀리기를 바랄 뿐. 죽어 천국에 가는 일보단 천국을 우리가
사는 지상에 가지고 오는 게 나을 거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린 아직
까마득히 멀었다. 이런 사고가 일어 나지 않게 하고, 세상의 이치상
어쩔 수 없이 일어 났다면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은 아직
미숙한 우리네 사회가 누릴 수 없는 호사에 속하는 걸까? 커 나가는
과정의 성장통이라면 그나마 붙잡을 몇 가닥 지푸라기라도 기대하겠으나,
우리네 사회의 고치기 어려운 본성이라면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흐른다.
귀에도 잘 들어 오지 않은 음악소리 속에서,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불합리의 진흙탕 속에 실종된 인간이성에 전율하는 아침이고,
막차를 간신히 얻어 타는 심정으로, 스스로 처절한 반성과 함께
이 분노가 사그러들어 치유될 수 있기를 기도하는 아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