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의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서로 음악을 좋아했고 그녀가 내게 끌린 가장 큰 이유가 음악이었기에.
서로 결혼하면서 약속한 맹세중의 하나가 결혼때문에 취미생활 제대로 못했다라는 원망을 하지 말자고 했다.
누구나 다 그렇듯이 집사람은 임신을 하게 되고 3개월이 지나 4개월째가 되니 계류유산이라고 처음 듣던 의료용어에 익숙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환경오염과 부실한 몸 탓으로 돌리고 건강을 회복한 후에 또다시 임신을 했다.
그런데 정말 진저리 칠 정도로 4개월째만 되면 계류유산이 되는 불상사를 그 후로도 세 번을 겪었다.
사실 결혼을 별로 탐탁치 않게 여기신 부모님께서 가뜩이나 아들이라고는 나 하나라 눈치도 엄청 보였고 사실 죄인도 아닌 데 장인,장모님들은 왜그리 집사람이 회복실에 누워 있는 데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개도 못 드시던지...
아무리 그래도 당사자인 본인의 심정에 비길 수 있을까?
그래도 부부는 매년 결혼초의 약속대로 휴가를 얻어 꼭 외국에 나갔다.
굳이 연주회 여행을 한 것은 아닌 데 몽트로 재즈 페스티발이니 몬테레이 재즈페스티발이며 스위의 어느 성당에서 오르간 독주회도 보고 국내에서는 에릭 클랩튼이며 스팅이며 적어도 월 1회 이상은 영화며 공연을 관람했다.
그런데 언제인지 모르게 집사람에게 아이가 들어서질 않았다.
그럴무렵,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만 들어봤던 고부간의 갈등...
드디어 입양이야기까지 나오고...
샌드위치 신세에 아직도 인격수양이 덜 되어 질풍노도기의 중3때 성질을 갖고 있던 나의 분기탱천으로 지척에 계신 부모님 얼굴도 못보고 수 개월을 보냈다.
고심하여 간 곳이 불임센터.
막상 그 곳에 등록을 하러가니 우리 부부같은 사람들은 명함도 못 내미는,즉 가슴시린 사연들의 부부가 더 많았던 것이다.
운이 좋았던지 다행히 2000년 여름 캐나다 산행을 마치고 공항에 마중나온 집사람이 임신 소식을 알려 주었고 삼신할미가 그동안 우리 부부의 마음 고생을 아시고 쌍생아를 점지하셨단다.
사실 가슴 한 켠에 일말의 불안감이(저희 안사람을 보신 분은 아시지만 연약하게 생겼거든요.)
만일 또 잘못되면 일생의 반려자인 집사람의 노후건강에도 문제가 생길 것 같아 가슴 속은 답답하기만 했다.
우려했던 임신 4개월을 넘기고 6개월까지 잘 지나갔다.
그 무렵 안정적인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누리던 어느 날,사무실로 집사람이 울먹이며 전화를 했다.
"창석씨 아이 하나가 숨을 쉬지 않아.의사 선생님이 잘못된 것 같다고 하셔.빨리 보호자 모시고 오래."
사색이 되어 병원으로 뛰쳐 갔다.
의사 선생님 왈,"산모의 건강과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중절 수술을 하셔야 됩니다.빨리 동의서 작성해 주시고 수술시간 잡는 데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옆에서 집사람은 게속 눈물만 흘리고 갑자기 눈 앞에서 어른거리는 것은 낙담하실 부모님과 처가어른들.
같은 여성의학과 동문선배를 부여잡고 숨이 붙어 있는 한 아이라도 살려줄 수 있는 지,아니면 제왕절개라도 해서 인큐베이터에서 키울 수 있는 지,지금 생각하면 참 철딱서니 없는 소리를 해댔다.
우리의 다급하고 딱한 사정을 이해하셨는 지 각서를 쓰고 만삭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다행히 10개월째까지 별 탈이 없이 출산 준비를 했는 데 이 녀석은 끝까지 도와주지 않고 거꾸로 누워있어 제왕절개를 해야한단다.
노심초사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데 방금 정상분만했으니 아기얼굴 보러 내려온단다.
오디오파일 대부분이 부모님의 입장이시라 잘 아시겠지만 그 때의 기분이란.
사실 얼굴에 하얀 가루 같은 것이 묻어 있는 핏덩어리가 나를 빼닮았지 않은 가.
기쁨도 잠시.정상적인 분만이 아니라 상세한 검진을 위해 신생아 중환자실에 일주일간 입원해야 한단다.
남편이 곁에 지켜주고 있어야 하는 데 하는 짓이 해외영업이라 신생아 중환자실에 딸아이를 두고 3주간의 해외출장...
말로만 듣던 손가락10개,발가락10개만 제대로 달려도~라는 심정이 십분 이해되었다.
바로 그 아이가 지금의 4살박이 내 딸이다.
고부간의 갈등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지금은 화목해서 오디오파일 모임이 있을 때면 알아서 찜질방에 같이 동행한다.
음악을 좋아해서 태교는 열심히 했는 데 이 녀석은 작년 3살 무렵부터 자기 손으로 CD나 DVD를 꺼내 작동시킨다.
특히 자주 듣거나 보는 곡이 있다.
아니 어릴 때부터 이 곡들이 나오면 자지러지게 반응을 보였다.
ERIC CLAPTON I SHOT THE SHERIFF
LAYLA
SUZI QUATRO STUMBLIN'IN
BEEGEES YOU SHOULD BE DANCING
D.D. BRIDGEWATER SHOW BOAT TO CHINA
DOORS LIGHT MY FIRE
요즘은 대구의 이승규님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하신 박인희 골든포크중에서 나무,벤취,길을 차에서 심하게 반복해서 들었더니 어제는 그 노래를 따라하는 것이 아닌가.
나를 화들짝 놀라게 할 때는 CD나 DVD의 위치를 바꾸어도(나는 수시로 레이블이나 쟝르별로 바꾼다) 기가 막히게 자기가 듣고 싶은 것을 꺼낼 때다.
얼굴도 판박이인 데다가 지난 번엔 아이어쇼도 같이 가고 수경방 정모도 같이 가고 설방 정모때도 참석하고 더 징그러운 건 나의 고집불통 성격까지 빼닮아서 제발 이 애비를 닮아서는 안되는 데라는 생각을 요즘 자주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이 녀석을 얻고 가장 아쉬운 점은 집사람과 같이 공연을 못 간다는 점이다.
영화야 뒤늦게 자동차극장이나 DVD를 통해서 볼 수 있지만 공연실황이야 그럴 수 없지 않은가.
나야 선배나 동호인들과 같이 가지만 그래도 내 인생의 반려자와 같이 느끼는 감동에 어찌 비견하겠는가.
비록 우리 부부의 공연관람을 가로막는 일생의 초강력 순간 접착제이지만 어찌하랴.
아마 그것도 잠시이리라.조금 있으면 어디 가자고 해도 부모를 따라 나서지 않을 RAGING BULL일 것인데.
원 창석 배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