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I.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상당수가 인티 앰프를 애용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인티 앰프가 가격적인 메리트도 있지만, 설계상으로 보면 프리와 파워를 합리적으로 한 새시 안에 담음으로써 수반되는 비용 절감과 신호 전달 경로의 단축 등 따지고 보면 장점도 상당하다. 실제로 어중간한 분리형을 훨씬 능가하는 인티 앰프가 많은 상황이고 보면, 향후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일종의 중간 기착지로 인티 앰프를 쓴다는 생각은 버려도 좋을 듯싶다.

아무튼 이번에 시청한 다섯 기종은 모두 사용한 출력관의 종류도 틀릴 뿐 아니라, 설계 방향이나 제품 컨셉, 심지어 국적까지도 다양해서 일종의 미인 선발 대회를 심사하는 흐뭇한 기분도 들었다. 참고로 소스에는 린의 이케미를 동원한 가운데 스피커는 시 웨이브(구 관음음향)의 삼사라와 스털링 브로드캐스트의 BBC 모니터 V2 3/5a(이하 BBC)를 번갈아 사용했다. 삼사라는 4옴, BBC는 8옴이 적당했지만 시청 환경에 따라 이 매칭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시청 음반은 다음과 같다.

1) 쇼스타코비치 첼로 소나타 1번 1악장
연주 : 장한나 / 지휘 : 안토니오 파파노
2) 야신타 Days of Wine &Roses
3) 사라사테의 카르멘 판타지, 연주 : 안네 소피 무터
4) 노라 존스 Don't Know Why

Audio Research VSi55

한 눈에 봐도 오디오리서치임을 실감케 하는 검은 도장의 다소 무뚝뚝한 외관이지만, 내부를 보면 합리적이고 알찬 설계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우선 분리형 프리에서 볼 수 있는 볼륨 및 셀렉터 노브가 없어서 아쉬움을 주지만, 간단한 점등으로 내용을 볼 수 있게 만든 디스플레이부는 매우 경제적이다. 물론 아주 최소한의 부품으로 간단하게 전면 패널 뒷부분에 기판이 부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버튼식 조작은 리모컨 대응으로 편리하기는 하지만 조작감이 투박해 세련미를 걷는 요즘의 시대 분위기와 동떨어진 느낌. 물론 이런 것도 오디오리서치만의 맛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내부는 크게 뒤쪽에 전원 트랜스 및 출력 트랜스가 보이는 가운데, 전해 콘덴서가 출력 트랜스 뒤에 가지런히 배치된 점이 눈에 띠는데, 소용량의 니치콘이라는 제품으로 믿을 만한 성능을 보장한다. 그 앞으로 노란색 기판 위에 설계된 프리부와 파워부가 질서정연하게 놓인 점이 기본기에 충실한 인티임을 알게 한다. 특히, 기판을 쓸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부품 열화 및 음질 저하를 방지하기 위해 기본 배선에 두툼한 알루미늄 코팅의 선재를 사용함으로써 신뢰감을 준다. 그 사이에 소용량의 저항과 같은 부품을 간단하게 납땜 처리한 것은 애교로 봐줘도 될 듯.

신호 전달 경로를 보면, 입력단에서 들어온 음성 신호가 6H1P라는 초단관 한 개로 처리된 가운데 프리부가 간단히 정리되고, 이어서 두 개의 6H1P가 드라이버단을 구성한다. 그리고 러시아제 일렉트로하모닉스의 6550 출력관으로 연결되는데, 채널당 2개씩 총 4개의 푸시풀 구성으로 50W의 출력을 얻고 있다. 여기서 지적할 것은 메이커가 분명치 않으나 노란색 캡으로 만들어진 렐 캡(Rel Cap) 콘덴서가 적절히 쓰였다는 것이다.

초단에는 콘덴서가 채널당 1개씩, 출력단에는 콘덴서가 채널당 2개씩 사용되었다. 생각 같아서는 호블랜드나 문도르프같은 이름난 브랜드의 제품으로 교체하면 어떨까 싶지만, 오랜 노하우를 지닌 메이커인 만큼, 이 소자들의 성능을 일단 신뢰해야 할 것이다. 리어 패널에는 4옴 및 8옴으로 스피커에 맞게 선택해서 케이블을 걸 수 있는 터미널이 있고, 5개의 언밸런스 입력 단자 외에 별도로 서브우퍼 출력 단자를 배열한 점도 이색적이다. 아마도 스피커에 따라 저역을 보정할 때 유용할 듯싶으며, 이를 위해 별도의 OP 앰프가 설치되어 있지 않을까 싶지만 확인해보지는 못했다.

음질 경향을 보면, 비슷한 출력의 코플랜드와 대조적이어서 흥미를 준다. 코플랜드쪽이 다소 생동감이 넘치고, 활기를 띠고 있다면 이쪽은 의외로 차분하고, 잘 컨트롤되어 있어서 마치 세련된 중년 신사를 보는 듯하다. 이를테면 무터의 연주에서 특유의 기세등등한 보잉이나 마찰음이 지극히 순화되어 거칠음이 없고, 야신타의 목소리는 노곤한 나머지 꿈속에 빠지는 듯한 안도감을 준다. 노라 존스 역시 풋풋한 20대보다는 40대에 가까운 연륜의 여성으로 바뀌어 깊은 맛을 느끼게 한다. 두툼하면서 질감이 좋은 베이스 라인의 처리는 BBC 모니터의 사이즈를 훨씬 초월한 박력으로 다가와 깜짝 놀라게 한다. 기본기에 충실하면서 음질적으로도 중립적인 성향의 모델이다.

- 이종학

II.

사용 시스템
스피커 : BBC 3/5a
CDP : 골드문트 Eidos 18CD SACD플레이어

시청 음반
- 에드 게하드 「루나」 Tennessee
- 야신타 Something’s Gotta Give
- Laurindo Almeida Feel so good
– 비르투오조 기타
-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2악장 ‘몰토 비바체’ 지휘 : 쿠르트 마주어 / 연주 :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벌써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SP11이나 SP8 프리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어느덧 2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예전의 명기이긴 하지만, 어느 누구든 글로벌 시장에서 대표적인 진공관 전문 브랜드를 떠올린다면 오디오리서치사는 잊지 않고 언급할 것이다. 이미 그들은 오랜 전통을 바탕으로 꾸준히 새로운 제품의 업버전을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 또한 최근 몇 년 동안의 개발에 대한 집념 및 디자인은 전통성과 현대의 느낌을 제대로 융화시킨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최상위 모델인 레퍼런스 라인, 단순히 계승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보단 현대 디지털 시대에 대한 수용을 의미하듯 고전적인 사운드와 현대적인 사운드를 적절히 조화시켜 한걸음 진보된 아날로그 지향의 하이엔드로써의 가치를 느끼게 해준다.

앰프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지만, 유난히 인티 앰프에 인색했던 오디오리서치라고 해야 할까? VSi55는 동사의 라인업 중 인티 앰프로써는 지금은 메인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제품으로, 전통적인 그들의 사운드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음악을 전개해나가는 특유의 느긋함에는 차별화된 성향을 들려준다. 구체적인 사운드의 특성은 다시 언급하겠지만 우선 중역대의 밸런스가 중심이 된 제품으로 고역이나 저역에 대한 배려는 다른 모습을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 인티 앰프라는 특성을 고려하며 편리성과 합리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전원의 구성이나 라인프리부의 구성에서 더욱 그런 느낌을 가져오게 한다.

사용 진공관은 출력관으로 KT88과 함께 5극관을 대표하는 6550을 사용하고 있다. 90년대 말부터 동사는 줄곧 소브텍사의 진공관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제품에는 현대적인 튜닝이 이루어진 EH(일렉트로하모닉스)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회로는 고정 바이어스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푸시풀 방식으로 구성하고 있다. 초단 및 드라이브용으로 6N1P를 사용하고 있는데, 높은 드라이빙을 요구하기보단 프로의 역량을 감안한 안정적인 드라이빙을 제시하고 있다. KT88과 호환이 되긴 하지만, 유독 그들이 6550의 튜닝을 고집하는 것은 아마도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유저들을 위한 배려로 강인함보다는 원숙함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Something’s Gotta Give"에서는 베이스가 다소 아쉽긴 하지만, 야신타의 위치는 스피커와 동일 선상에서 과장 없는 무대를 구성하면서 드럼의 빠른 움직임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조금은 소극적인 피아노 타건이 적당히 절제력 있게 들린다. 이에 반해 에드 게하드의 핑거스타일의 기타 연주는 기타의 중심이동을 정확히 제공하여 적절한 무대와 과장 없는 능숙한 연주를 사운드로 들려주고 있다. 대편성에는 넓지 않은 스테이지를 제공하며, 구동력보단 중역 밸런스 중심으로 이끌어 내고 있다. 이 제품의 의미를 찾는다면 오디오리서치의 보급형 인티 앰프를 경험할 수 있다는 부분이 가장 매력 있을 것인데, 음압이 높은 스피커와의 매칭을 권장하고 싶다.

- 장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