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7회 시청회 후기
Linn Selekt DSM, Katalyst DAC과 포노스테이지 두 날개를 달다
277회 시청회의 주인공은 영국 린(Linn)의 네트워크 플레이어 겸 프리앰프인 Selekt(셀렉트) DSM이었습니다. 린은 잘 아시는 대로 일찌감치 자신의 전략상품이었던 CD플레이어를 포기하고 네트워크 재생에 집중해온 브랜드입니다. 셀렉트 DSM은 이런 린의 네트워크 플레이어/프리앰프 라인업 중 최신이자 서열 3위인 제품으로, 위에 Klimax(클라이막스) DSM과 Akurate(어큐레이트) DSM, 아래에 Majik(매지크) DSM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청 모델은 린이 지난 2016년 발표한 4세대 DAC 아키텍처인 Katalyst(카탈리스트) DAC 모듈이 내장됐습니다. 또한 Sondek(손덱) 12의 제작사답게 포노 스테이지가 내장됐는데, 입력된 아날로그 신호를 일단 ADC를 통해 디지털 신호로 바꿔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린이 자랑하는 DSP를 거치도록 하기 위해서죠. 이에 따라 이번 시청회는 카탈리스트 DAC 내장 모델과 일반 모델의 AB 테스트, 셀렉트 DSM의 ADC 컨버팅을 거친 LP 재생과 일반 아날로그 포노 스테이지의 AB 테스트 위주로 진행됐습니다.
Selekt DSM은 어떤 네트워크 플레이어?
2108년 말 출시된 셀렉트 DSM은 DAC을 내장한 네트워크 플레이어 겸 프리앰프입니다. PCM은 24비트/192kHz까지, DSD는 DSD128까지 재생할 수 있고, 린 전용 Kazoo(카주) 앱이나 룬(Roon)을 이용해 타이달과 코부즈, 인터넷 라디오(TuneIn Radio), NAS 음원을 즐길 수 있습니다. UPnP/DLNA 네트워크 플레이도 가능합니다.
특정 오디오가 뭘 할 수 있는지는 대개 후면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후면부터 봅니다. 시청 모델은 맨 오른쪽에 밸런스(XLR)와 언밸런스(RCA) 출력 단자가 장착된 기본 모델입니다. 만약 클래스 D 앰프가 내장된 모델을 선택하면 이 부분에 스피커 케이블 연결용 바인딩 포스트가 2조 마련됩니다. 이는 셀렉트 DSM이 기본적으로 모듈식으로 설계됐기에 가능한 일이죠. 또 다른 옵션으로 5.1 채널 서라운드 모델을 선택하면 바인딩 포스트는 5조로 늘어나고 서브우퍼 출력과 HDMI 모듈이 추가됩니다.
계속해서 후면을 보면 다양한 디지털/아날로그 입력단이 구비됐는데, 디지털 입력단은 광 2, 동축 2, USB-B, HDMI ARC, 이더넷 입력단이 있고, 아날로그 입력단(RCA)으로는 라인 입력단 1조, MM 입력단 1조, MC 입력단 1조가 마련됐습니다. 린 액티브 스피커와 연결을 위한 Exakt(이그잭트) 링크단이 2개 준비된 점도 눈길을 끄네요.
유저와 인터페이스는 주로 상단에 있는 둥근 다이얼과 6개 입력 버튼, 리모컨,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카주 앱이나 룬 리모트 앱을 통해 이뤄집니다. 사실 셀렉트 DSM의 외모가 돋보이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상단에 노출된 커다란 볼륨 휠과 전면의 OLED 디스플레이 덕분입니다. 특히 볼륨 휠의 경우 바깥쪽 다이얼을 돌려 볼륨을 조절할 수 있고, 위아래 혹은 좌우를 눌러 입력을 선택할 수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셀렉트 DSM의 첫 번째 날개 : Katalyst DAC
이게 다가 아닙니다. 셀렉트 DSM의 숨은 비기, 결정적 신의 한 수는 내장 DAC을 Katalyst DAC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카탈리스트 DAC은 린이 2016년에 선보인 4세대 DAC 아키텍처로, 1세대가 1991년에 나온 분리형 DAC Numerik(뉴메릭), 2세대가 1998년의 CD12, 3세대가 2007년에 나온 Klimax DS에 투입됐습니다.
카탈리스트 DAC은 내부 전원을 5개 파트로 나눠 각각 업샘플링, 모듈레이션, 컨버전, 출력, 마스터 클럭에 공급하는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를 통해 안정된 기준전압을 유지, 노이즈와 왜곡을 획기적으로 줄였다는 게 린이 설명입니다. 아날로그 신호 생성 시 음압레벨의 기준이 되는 전압의 흔들림을 이전 3세대에 비해 -10dB나 줄였다는 것이죠.
이러한 카탈리스트 DAC의 성능은 린이 공개한 SNR(신호 대 잡음비) 그래프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래프는 카탈리스트 DAC이 기본 장착되는 플래그십 Klimax DS/3(파란색)과 이전 모델인 Klimax DS/2(빨간색)를 비교한 것입니다. 전 대역에서 걸쳐 SNR이 평균 10dB 낮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린에서는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 신호로 ‘변환’(converting) 하는 수준이 아니라 새로 ‘창조’(creation) 하는 수준이라고까지 합니다.
이 밖에 컨버팅 관련 스펙은 기본 DAC과 동일하지만 다이내믹 레인지가 114dB에서 117dB로 늘어난 것이 가장 큰 차이입니다. DAC 칩도 기본 모델이 일본 아사히카세이의 AKM4493을 쓰는데 비해 카탈리스트 DAC은 아사히카세이의 플래그십 칩인 AKM4497을 씁니다.
블라인드 테스트 : 카탈리스트 DAC 모델 vs 기본 DAC 모델
시청회는 곧바로 이 카탈리스트 DAC을 장착한 모델과 기본 DAC을 장착한 모델의 AB 테스트부터 시작했습니다. 시청회에 참석하신 분들에게 어느 것이 카탈리스트 DAC으로 업그레이드된 셀렉트 DSM 인지 공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두 기기의 음질을 비교한 것이지요. 셋업 된 기기는 매킨토시의 프리앰프 C52와 파워앰프 MC462, B&W의 802 D3 스피커였습니다.
Diana Krall - A Case of You
Live In Paris
먼저 정면에서 봤을 때 왼쪽에 있던 셀렉트 DSM으로 들어봤습니다. 사전 정보가 일절 없는 상태여서 그런지 시청회 참석자분들도 귀를 쫑긋 세워 집중하시는 모습입니다. 우선 피아노 페달을 누르는 압력과 객석의 기침소리가 디테일하게 잘 파악됩니다. 음의 중량감과 홀톤, 다이애나 크롤 특유의 메탈릭한 음색도 잘 느껴지네요. 한 음 한 음을 정성껏 연주한다는 느낌도 듭니다. 전체적으로 음이 거칠지가 않습니다.
Neeme Jarvi, Scottish National Orchestra - Dance Macabre
Saint-Saens
이어 대편성곡을 들어보니 광폭의 다이내믹 레인지가 확연합니다. 스피커 임피던스에 상관없이 450W를 뿜어내는 매킨토시 MC462의 덕을 크게 봤겠지만, 저역의 양감과 에너지감이 상당하네요. 하여간 앙상 맞거나 홀쭉한 음은 절대 아닙니다. 또한 소릿결이 매끄럽고 투명한 점도 돋보이는데, 그렇다고 쌀쌀맞을 정도로 냉랭하거나 어이없이 뭉개지는 음도 아닙니다. 오히려 정신이 번쩍 날 정도로 선명한 음에 가깝습니다. 갑자기 찾아든 적막에는 귀가 먹먹할 정도입니다.
이렇게 2곡을 연이어 들은 다음, 이번에는 오른쪽에 있던 셀렉트 DSM으로 바꿔 같은 곡을 들어봤습니다. 네트워크 플레이어에 내장된 DAC을 AB 테스트하는 것이므로 사운드스테이지의 폭과 깊이, 악기 분리도, 전체적인 음의 해상도에 집중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다시 들은 다이애나 크롤의 ‘A Case of You’는 어이쿠 소리가 저절로 나올 정도로 음의 열화가 심합니다. 먹먹하고 디테일은 떨어지며 무대는 좁습니다. 특히 무대의 앞뒤 거리가 가까워진 점이 확연하네요. 한마디로 둔하고 굼뜬 음입니다. 이어 또다시 왼쪽에 있던 셀렉트 DSM으로 바꿔 앞부분만 들어보면, 음이 갑자기 고와지고 윤곽선이 또렷해집니다. 소릿결이 확 펼쳐지네요. 니메 예르비의 ‘죽음의 무도’도 거의 비슷한 양상을 보였습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처음에 들은 것이 카탈리스트 DAC을 내장한 셀렉트 DSM이었습니다. 다이내믹 레인지와 에너지감이 확 늘어나는 게 체감상 가장 큰 변화였습니다. 빌 에반스(Bill Evans)의 ‘Waltz For Debby’도 카탈리스트 DAC으로 들었을 때 각 악기의 레이어감이 도드라졌고 카페 라이브 녹음 특유의 곳곳에서 수군대는 소리도 더 잘 들렸습니다. 퀸(Queen)의 ‘Love of My Life’에서는 가닥수가 많은 음들이 입체적으로 잘 펼쳐졌습니다.
셀렉트 DSM의 두 번째 날개 : 포노 스테이지+ADC
시청회 2부는 셀렉트 DSM의 내장 포노 스테이지와 ADC(아날로그 디지털 컨버터) 성능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봤습니다. ADC를 포함시킨 것은 셀렉트 DSM이 포노와 라인 모두 아날로그 입력신호는 ADC를 통해 디지털 신호로 바꾼 후 카탈리스트 DAC으로 넘기기 때문입니다. 또한 포노 스테이지의 주요 임무 중 하나인 RIAA 커브 보정도 ADC 이후 디지털 영역, 즉 DSP에서 이뤄집니다.
셀렉트 DSM의 내장 포노 스테이지는 MM/MC 모두에 대응합니다. MM 입력의 경우 부하 임피던스는 47k옴, 부하 커패시턴스는 100pF이며, 최대 입력 전압은 67mVrms입니다. MC 입력의 경우 부하 임피던스는 100옴, 부하 커패시턴스는 470pF, 최대 입력 전압은 5.5mVrms입니다. 이렇게 들어온 MM/MC 아날로그 신호는 ADC를 통해 24비트/192kHz 디지털 신호로 바뀐 후 DSP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AB 테스트 : 디지털 음원 vs 린 셀렉트 DSM 포노 vs 매킨토시 C52 포노
셀렉트 DSM의 내장 포노 스테이지와 ADC 테스트는 우선 같은 곡을 디지털 음원(16비트/44.1kHz)와 LP로 들어본 후, 매킨토시 프리앰프 C52의 내장 포노 스테이지로도 들어봤습니다. 참고로 C52의 내장 포노스테이지는 MM이 40dB, MC가 60dB의 게인 값을 갖습니다. 최소 입력 전압(감도)은 MM이 4.5mV, MC가 0.45mV입니다. 턴테이블은 하이파이클럽 시청회에 자주 등판하는 웰템퍼드 랩의 Amadeus MKII입니다. 장착된 다이나벡터의 DV-19X5 MKII MC 카트리지는 2.8mV 출력에 내부 임피던스는 150 옴을 보입니다.
Eva Cassidy - Fields of Gold
Songbird
1) 먼저 하이파이클럽 NAS에 담긴 16비트/44.1kHz WAV 파일로 들어봤습니다. 디테일이 가득한 가운데 고역이 쭉쭉 뻗으며 악기와 보컬의 분리도가 만족스럽습니다. 기타 연주음은 선명하게 들리네요. 하지만 16비트 디지털 음원의 정보량은 확실히 24비트 음원에 비해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2) 이어 LP로 같은 곡을 셀렉트 DSM으로 들어보면, 배음과 정보량에서 ‘풍윤’이라고 메모를 했을 만큼 큰 격차를 보입니다. 공간감이 잘 느껴지는 것도 두드러지는 변화입니다. 24비트/192kHz로 컨버팅된 디지털 영역에서 포노 신호를 건드리는 일이 마치 음원을 새로 리마스터링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3) 매킨토시 C52로 들어봅니다. 이제 재생 단계 어느 곳에도 디지털이 끼어들지 않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음상이 더 또렷하고 선명하며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대신 셀렉트 DSM 내장 포노를 거쳤을 때의 그 풍윤한 느낌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4) 다시 셀렉트 DSM으로 들어보면, 배음과 잔향이 C52보다 더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선사합니다. C52가 담백했다면 셀렉트 DSM은 기름기가 싹 가신 소리인 것도 대비됩니다. 소릿결이 매끄럽고 부드러운 점도 예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Dire Straits ‘Sultans Of Swing’(Dire Straits)
확실히 LP를 셀렉터 DSM으로 들을 때 가장 크게 와닿는 것은 재생음이 깨끗하고 선명하다는 것입니다. 악기의 분리도와 다이내믹 레인지도 여느 웬만한 포노 스테이지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높습니다. 이는 최종 수문장 역할을 하는 카탈리스트 DAC 색채나 성향이 크게 반영된 결과로 보입니다. 비유하자면 사물 사진을 찍는데 여러 조명을 써서 그림자가 생기지 않게 한 것 같습니다. 이에 비해 매킨토시 C52는 자연광에서 찍어 보다 자연스러운 그늘이 생기는 재생음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 만든 디지털 네트워크 플레이어가 포노 스테이지까지 품에 안으면 이토록 해상도가 높은 재생음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4세대로 진화한 린의 DAC 아키텍처의 놀라운 실력을 오히려 LP를 들어보며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시청회를 마무리하며
사실 린의 셀렉트 DSM을 제대로 살펴보려면 시청회 2시간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합니다. 린의 장기인 Konfig(컨피그) 앱을 통한 공간 및 스피커 최적화 소프트웨어는 아예 맛도 못 보았으니까요. 오히려 매킨토시 C52와의 형평성(?)을 위해 B&W 802 D3에 최적화시켜놓았던 소프트웨어를 ‘오프’시키기까지 했습니다. 이미 국내외 리뷰를 통해 잘 알려졌지만 이 소프트웨어를 최적화시키면 거의 다른 기기와 스피커로 바꾼 것처럼 큰 변화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비장의 무기를 들지 않고도 셀렉트 DSM은 훌륭한 적토마였습니다. 디지털 네트워크와 아날로그 LP 전장, 어디든 가리지 않고 언제든 종횡무진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는 네트워크 플레이어/프리앰프입니다. 그리고 그 핵심은 시청회 참석자분들 대부분이 그 음질적 우위를 인정하셨던 카탈리스트 DAC과, 포노 신호마저 DSP에서 처리한 린의 역발상 설계가 아닐까 합니다. 이런 점에서라도 린은 독보적인 제작사인 것 같습니다. 시청회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