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도 다시 한번!
사태를 돌이킬 수 없게 꼬이게 만든 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A4 용지에 인주까지 갖추고 거실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집사람을 애써 외면하고 귀가하자마자 리스닝룸부터 찾았습니다. 어차피 내칠 오디오라 생각하니 마지막으로 그 소리나 한번 더 듣고 각서를 쓰자는 심산이었지요. 결코 그 어떤 미련 찌꺼기가 남아서라거나 결심을 번복하기 위한 수작이 아니었답니다. (진짜로... 이 사람 믿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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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씀드려야 할 거 같습니다.
저...각서 쓰지 못했습니다.
굳이 설명하자면...안 쓴 것은 아니고요...다만 쓰지 못했을 뿐입니다.
왜냐고요?
마지막 이별이란 생각에 젖어서인지 우째 그날 소리가 어쩌면 그다지도 구구절절 가슴을 후벼파고 날 감동시키던지요. 이건 도저히 제 시스템에서 뺄 수 없는, 지금껏 단 한번 들어보지 못했던 구극의 사운드를 뽑아젖히는데, 인간인 이상 그 究極의 소리 앞에서 어찌 救國의 칼을 뽑을 수 있겠습니까.
인정머리라고는 손톱에 낀 때만큼도 없는 붐붐이 "사내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다그치고 있지만, 그런 상황에서 칼을 내리치는 게 어디 인두겁을 쓴 인간이 할 도리입니까? 사실 따지고 보면 김유신 장군도 그렇습니다. 그 양반이 역사에 남을 인물이다 보니 우리가 애마의 목을 벤 일화를 교훈으로 삼는거지...만약 범인이라 가정해 보세요. 솔직히 애마가 뭔 죄가 있나요? 맨날 기녀집이나 들락거린 자기 탓이지요. 애꿎은 명마나 한마리 날려보내고, 그것도 관에 허가받지 않은 밀도살 아니던가요?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전 무엇보다 개명천지에 사는 개화된 인간으로서 밀도살만큼은 저질러선 안되겠다 싶어 구극의 사운드에 젖어 주체할 수 없는 몸을 이끌고 거실로 나와 즉시 봉사마에게 전화를 넣었지요. 그리고는 집사람이 충분히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떠들었지요.
"봉사마...미안하지만 날 좀 도와줄 수 있겠나? (한숨을 포옥 쉬고는) 아무래도 오디오를 정리해야 할 거 같아서...이유는 묻지 말고...내 기기 받을만한 사람들 좀 알아봐줘..."
그러자 예상했던 대로 방방 뛰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연신 들려옵니다.
아니 왜 그러시냐? 노루골의 그 시스템이 지금껏 자기가 어떻게 구축한 시스템인데 한순간 자기 허락도 없이 허무느냐...뭐 이런 어필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무지하게 어이없고 우스운 항변이죠. 아니 내가 내 시스템을 정리한다는데 왜 봉사마가 더 길길이 날뛰고 난리지? ^^;;
하여간 이를 빌미삼아...집사람에게 봉사마의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봉사마가...누구 맘대로 자기 서브시스템을 처분하느냐는데? 하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날이 새나 밤이 깊으나 사시사철 공을 들였던 시스템이고 보면 무리도 아니지...아무래도 각서를 하루 정도 미루는 게 도리일 거 같아...하루만 더 심사숙고해 보자고..."
그 하루가 하루 하루 지나....어느새 열흘이나 지났군요.
하기야 죄가 밉지 어디 인간이 밉겠습니까.
인간의 마음이 간사한 것이지 어디 오디오가 죄이겠습니까.
그나저나 이 녀석들은 평소에, 좀 진작에 흉금을 울리는 소리를 내줄 것이지 어쩌자고 일 다 벌리고 나니 낼 건 뭐람...어험, 험!
뭐 그렇다고 다들 대놓고 너무 웃지는 마셈. 아래 만화처럼 너무 아픈 사람 앞에 두고...따지고 보면 다 개찐도찐 아닌가베...
사태를 돌이킬 수 없게 꼬이게 만든 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A4 용지에 인주까지 갖추고 거실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집사람을 애써 외면하고 귀가하자마자 리스닝룸부터 찾았습니다. 어차피 내칠 오디오라 생각하니 마지막으로 그 소리나 한번 더 듣고 각서를 쓰자는 심산이었지요. 결코 그 어떤 미련 찌꺼기가 남아서라거나 결심을 번복하기 위한 수작이 아니었답니다. (진짜로... 이 사람 믿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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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씀드려야 할 거 같습니다.
저...각서 쓰지 못했습니다.
굳이 설명하자면...안 쓴 것은 아니고요...다만 쓰지 못했을 뿐입니다.
왜냐고요?
마지막 이별이란 생각에 젖어서인지 우째 그날 소리가 어쩌면 그다지도 구구절절 가슴을 후벼파고 날 감동시키던지요. 이건 도저히 제 시스템에서 뺄 수 없는, 지금껏 단 한번 들어보지 못했던 구극의 사운드를 뽑아젖히는데, 인간인 이상 그 究極의 소리 앞에서 어찌 救國의 칼을 뽑을 수 있겠습니까.
인정머리라고는 손톱에 낀 때만큼도 없는 붐붐이 "사내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다그치고 있지만, 그런 상황에서 칼을 내리치는 게 어디 인두겁을 쓴 인간이 할 도리입니까? 사실 따지고 보면 김유신 장군도 그렇습니다. 그 양반이 역사에 남을 인물이다 보니 우리가 애마의 목을 벤 일화를 교훈으로 삼는거지...만약 범인이라 가정해 보세요. 솔직히 애마가 뭔 죄가 있나요? 맨날 기녀집이나 들락거린 자기 탓이지요. 애꿎은 명마나 한마리 날려보내고, 그것도 관에 허가받지 않은 밀도살 아니던가요?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전 무엇보다 개명천지에 사는 개화된 인간으로서 밀도살만큼은 저질러선 안되겠다 싶어 구극의 사운드에 젖어 주체할 수 없는 몸을 이끌고 거실로 나와 즉시 봉사마에게 전화를 넣었지요. 그리고는 집사람이 충분히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떠들었지요.
"봉사마...미안하지만 날 좀 도와줄 수 있겠나? (한숨을 포옥 쉬고는) 아무래도 오디오를 정리해야 할 거 같아서...이유는 묻지 말고...내 기기 받을만한 사람들 좀 알아봐줘..."
그러자 예상했던 대로 방방 뛰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연신 들려옵니다.
아니 왜 그러시냐? 노루골의 그 시스템이 지금껏 자기가 어떻게 구축한 시스템인데 한순간 자기 허락도 없이 허무느냐...뭐 이런 어필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무지하게 어이없고 우스운 항변이죠. 아니 내가 내 시스템을 정리한다는데 왜 봉사마가 더 길길이 날뛰고 난리지? ^^;;
하여간 이를 빌미삼아...집사람에게 봉사마의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봉사마가...누구 맘대로 자기 서브시스템을 처분하느냐는데? 하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날이 새나 밤이 깊으나 사시사철 공을 들였던 시스템이고 보면 무리도 아니지...아무래도 각서를 하루 정도 미루는 게 도리일 거 같아...하루만 더 심사숙고해 보자고..."
그 하루가 하루 하루 지나....어느새 열흘이나 지났군요.
하기야 죄가 밉지 어디 인간이 밉겠습니까.
인간의 마음이 간사한 것이지 어디 오디오가 죄이겠습니까.
그나저나 이 녀석들은 평소에, 좀 진작에 흉금을 울리는 소리를 내줄 것이지 어쩌자고 일 다 벌리고 나니 낼 건 뭐람...어험, 험!
뭐 그렇다고 다들 대놓고 너무 웃지는 마셈. 아래 만화처럼 너무 아픈 사람 앞에 두고...따지고 보면 다 개찐도찐 아닌가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