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모 잡지사에서 25개의 북셀프 특집을 의뢰한 적이 있다. 아니, 정확히는 50개인데, 실제 평을 쓰는 것은 25개였으므로 집중 감상한 것은 25개에 그쳤다. 그러나 전반적인 시청평이나 총평을 쓰는 일을 맡았으므로, 결국 이틀에 걸쳐 50개를 모두 듣는 진기록(?)을 수립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하루에 25개씩 들은 셈이므로, 행사를 끝내고 나니 귀에서 계속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 약간의 어지럼증까지 느껴야 했다. 오디오 평론이란 게 어찌 보면 고상한 듯 싶어도, 이런 터프한 일이 꽤 된다. 심지어 세팅을 위해 무거운 스피커나 앰프를 끙끙거리고 땀을 쏟을 때면, 무슨 노가다 현장에 온 듯한 착각도 느끼니, 이런 것을 직업병이라고 웃어넘기기엔 뭔가 비장한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오디오를 평할 때 제일 비장한 일이 바로 이런 비교 청취다. 나름대로 메이커에서 정성들여 만...
해묵은 논쟁을 다시 테이블에 올려놓아 보자. 과연 프리앰프라는 존재가 필요한 것일까 ? 소스의 메인이 CD가 되면서 불륨단을 갖춘 CDP내지는 DAC가 등장, 이런 논쟁이 시작된 것이 10여 년 전쯤의 일이다. 신호의 선도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CDP와 파워 앰프의 직결이 갖는 이점은 분명히 있다. 특히, 양질의 볼륨단을 채용하고 있다면, 경비 절감이라는 또 다른 변수도 개재해 굳이 프리앰프를 시스템에 도입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물론 아날로그를 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그러나 이런 논쟁은 역으로 프리앰프의 발전을 촉진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생존의 위협에 처한 마당에, 내놓으라는 앰프 메이커들이 손가락이나 빨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특히, 프리앰프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이 볼륨단인데, 이 부분에 대한 개선이 신속하게 이뤄지면서 거의 신호를 손실하지 않으며 프리앰프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술력이 대두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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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전차남"이라는 영화를 봤다. 매우 소심하고, 연약한 심성의 주인공이 우연한 기회에 초절정 미녀를 만나 번민하고 고뇌하는 이야기를 담은 코메디인데, 워낙 스토리가 처절해서 두고두고 인상에 남는 작품이다. 여기서 주인공이 처음 여자 친구의 집을 방문하는 대목이 나온다. 잘 지어진 단독 주택에 유럽의 고급 주택 뺨치는 호화롭고, 고풍스런 인테리어는 주인공의 마음을 더욱 꽁꽁 얼어붙게 하지만, 갑자기 그의 눈이 환해진다. 구석에 놓인 오디오 시스템을 본 것이다. 달려가서 직접 조작해서 음악이 흐르자 드디어 마음이 풀어지고, 용기를 얻게 된다. 이때 놓인 시스템이 바로 이번에 소개할 마란츠 앰프 및 SACD 플레이어 세트다. 일본에서 마란츠는 꽤 독특한 성격을 지닌 브랜드다. 영상과 음성을 다루는 기기들을 주로 생산하는데, 최근 데논과 연합하면서 D&M 홀딩스로 발돋움, 업계에 강한 영향력을 ...
“뉴질랜드요? 그 나라에도 공업이 발달했나요? 농업이나 관광업만 할 줄 알았는데 그 나라에서도 오디오를 만드나요?” ‘반지의 제왕'의 배경으로 익숙해졌을지는 몰라도, 하이파이 매니아들에게 있어서 뉴질랜드는 오디오에 있어서 제 3 세계에 속한다. 그런데 이렇게 변방에서 만들어진 제품들은 서럽다. 비단 국내의 상황만은 아니겠지만 매니아들은 똑같이 처음 보는 브랜드라도 미국이나 유럽의 몇 나라와 같은 오디오 강국에서 만든 제품들과 제 3 세계에서 건너 온 제품들을 차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정받는 경우는 드물다. 브랜드의 지명도가 낮은 제품이 가진 우수한 면들은 애호가들이 주의 깊게 보지 않아 묻혀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 반면, 어쩌다가 발견된 작은 결점은 제품 이미지에 치명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플리니우스는 성공했다. 오디오 강국들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서도, 그리고 특히 보수적인 국내에서도...
가끔 우리의 오디오 제작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있다. 열악한 상황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스피커며 앰프, 케이블 등을 만드는 모습에 늘 놀라곤 하는데, 특히 몇몇 설계자는 굳이 장인이라 칭하지 않아도 될 만큼 엄청난 실력을 갖고 있다. 과연 우리 오디오 업계가 앞으로 세계 시장에서 인정을 받고 또 뻗어나가려면 어느 부분에 강점이 있을까 가끔 자문해본다. 아무래도 진공관 앰프, 그중 프리앰프의 경우 거의 세계 수준에 근접했다고 평가할 만하다. 원래 우리 나라 사람들의 손재주는 알아준다. 꼼꼼하고, 야무지다. 거기에 눈썰미까지 있어서 한번 보면 금새 따라할 정도다. 진공관 앰프는 설계상의 혁신보다는 이런 만듦새며 배선, 납땜, 튜닝 등이 더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이런 부분에 강점을 지닌 우리 메이커들이 앞으로 더욱 뛰어난 프리앰프들을 선보일 것 같다. 이렇게 프리앰프가 선도한 가운데, 파워 앰프며 스피커 등이 차례로 주목을 받는 날이 빨리 왔으면 싶...
가끔 오디오파일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요즘 천장부지로 치솟는 오디오 가격에 대해 화제를 삼게 된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기술력과 부품을 투입했기에 그런 가격을 받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분들도 꽤 된다. 분명 타당한 지적이다. 물론 필자는 하이 엔드를 표방하는 제품에 들어간 막대한 R&D와 테크놀로지를 인정하며, 결국 음을 들어보면 그만한 값어치를 한다고 수긍하는 쪽이지만, 이런 지적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흥미로운 것은, 여러 기종의 앰프나 스피커를 쭉 늘어놓고 차례차례 비교 시청을 하면 대개 가격순으로 실력이 판가름난다는 점이다. 거의 예외가 없다. 그런 면에서 오디오라는 존재는 매우 자본주의적이라 하겠다. 만든 쪽이야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가격을 책정했겠지만, 시장에 나오면 정확하게 가격대에 맞게 포지셔닝이 되는 부분은 신기하기만 하다. 얼마 전 우연히 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여기서 ...
허공에 둥실 음이 떠오른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홀로그래픽한 그림을 보는 것처럼, 손을 뻗으면 만져질 것만 같은 리얼한 음상. 그러면서 이 작은 스피커에서 상상할 수 없는 와이드 레인지한 음 조성은 과연 무엇인가. 눈을 감으면 스피커의 존재가 사라지면서 스피커 바깥에까지 음장이 확대되어 더할 나위없는 쾌감을 선사한다. 사실 현대 하이 엔드의 가장 큰 화두는 스테레오 이미지가 아닐까 한다. 일단 이 음에 중독이 되면 앞으로만 쏟아내는 스타일의 스피커는 대면하기조차 싫어진다. 아무리 음색이 아름답고, 중역대가 매끈하다고 해도 두어 곡 듣고 나면 곧 지루해진다. 그런 면에서 본 기가 갖고 있는 장점은 상당하다. 더구나 5평 이하의 리스닝 룸에서 대부분 오디오를 할 수밖에 없는 우리 현실을 감안하면, 이처럼 북셀프의 장점을 철저하게 살리면서 3웨이로 구성된 본 기의 존재는 귀중하기까지 하다. ...
1980년에 설립된 캐나다의 중견 오디오 업체인 심오디오는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본격 오디오업체의 위상을 착실하게 다져가고 있는 회사이다. 현재 이 회사의 간판으로 자리 잡은 문 시리즈는 하이엔드 오디오에 대한 심오디오의 열망을 집약한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클래식·에볼루선·A/V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시리즈에서 하이파이 분야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클래식 시리즈에는 에퀴녹스 CD SE·CD5.3 플레이어, i-3 SE·i5.3 인티그레이티드 앰프, LP5.3 포노 프리앰프, P-3·P5.3 프리앰프, W-3·W5.3·W-6 파워 앰프 등이 속해 있으며, 에볼루션 시리즈에는 이번에 필자가 시청한 슈퍼노바 CD 플레이어를 비롯하여 안드로메다 CD 플레이어, i-7 인티그레이티드 앰프, P-7·P-8 프리앰프, W-7·W-7M·W-8 파워 앰프 ...
독일의 스피커 회사인 피셔&피셔에서 내 놓은 플로어형 모델인 SN450은 필자에게는 뜨거운 감자 같은 존재이다. 지난 25년 동안 필자가 지켜 온 소신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디오와 돌은 그리 잘 어울리는 궁합이 아니라는 필자의 믿음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스피커나 플레이어의 받침대로 대리석을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만큼, 필자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적지 않겠지만, 석재의 효용성을 인정하는 애호가의 관점으로 보더라도, 피셔&피셔의 행보는 호기(豪氣)가 지나치다는 느낌을 버리기는 힘들 것 같다. 이들은 인클로저 자체를 돌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필자가 시청한 SN450은 자연 상태의 슬레이트, 그러니까 점판암(粘板岩)을 인클로저의 재질로 채택하고 있다. 이렇게...
전세계의 내놓으라 하는 평론가 중에 가장 필자의 취향에 가까운 인물이라면 아무래도 일본의 미우라 다카히토라는 분이 꼽힐 것이다. 원래 음반 관계 일을 하다가 우연히 후 노부유키라는 오디오 평론가를 알게 되면서 스피커를 바꾸고, 앰프를 올리고 하는 와중에 오디오 관계 일을 시작하다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평론가의 한 사람으로 자리잡았다. 그는 클래식도 좋아하지만 록이며 재즈에도 조예가 깊고, 빈티지 계통보다는 저역의 에너지를 충분히 갖춘 하이 엔드쪽을 좋아한다. 그 점에서 필자의 오디오관과 일치한다고 하겠다. 미우라가 처음 쓴 스피커는 굿맨의 액시옴 301이다. 그가 대학 1학년 때 오디오 애호가인 숙부로부터 물려받은 제품이다. 이후 알텍 604-8G, JBL L-300을 거쳐 후에게서 양도받은 어쿠스태트를 들은 후 전향, 잠시 어쿠스틱 에너지 AE 2를 쓰다가...
도플갱어라는 말이 있다. 자기와 똑같은 존재가 따로 있다는 것인데, 주로 심령과학이나 공포 영화의 테마로 쓰이는 소재다. 그런데 오디오계에서 필자에게 그런 존재가 있으니 바로 에벤 오디오의 설계자 마이클 뵈렌슨이 그 주인공이다. 일단 외모부터 약간 퉁퉁한 점이 비슷한 데다가 대화를 나눠보니 육식을 좋아하는 거며, 핑크 플로이드나 다이어 스트레이츠 등을 자주 듣는 거며, 또 오디오에 관한 생각에서 흡사 일란성 쌍둥이를 보는 것 같았다. 사실 이것은 필자에게 큰 행운에 속한다. 필자와 똑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 스피커를 만들었다면 결국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나 이렇게 쓰면 무조건 팔이 안으로 굽을 수도 있으므로, 좀 신중하게 X5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일단 음을 듣고...
독일의 소닉스는 오디오피직의 창설자이자 디자이너였던 요아힘 게르하르트가 새롭게 설립한 신진 스피커 메이커이다. 스피커 유닛은 최첨단 드라이버 해석장치를 통해 자기 회로 설계, 진동판 소재 선정, 진폭의 대칭성 유지를 고려하여 스피커에 최적화된 유닛을 노르웨이의 SEAS에 특주한다. 2.2cm 구경의 트위터는 매우 독특한 구조가 특징인데, 링 라디에이터 구조의 소프트 돔과알루미늄 마그네슘 합금 메탈 돔이 합쳐져 있어 하드 돔과 소프트 돔의 장점을 겸비하였다. 13cm 구경의 미드레인지는 양면에 코팅 처리가 된 매우 가벼운 페이퍼 콘이며, 우퍼는 20cm 구경의 알루미늄 콘에 세라믹을 코팅하여 두 발을 사용한다. 요아힘은 저역 재생을 위한 최적 재료로 메탈 콘이 가장 적합하다고 인식했다. 가볍고 강하기 때문에 순발력 있는 초저역 ...
몇 해 전 필자가 크렐의 앰프를 한번 써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을 때 L님이 손사래를 치며 마다했다. 그는 원래부터 아름다운 디자인을 선호하는 사람이었고, 그의 오디오 철학은 확고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음악을 듣는 행위는 단순히 귀에만 한정된 것만이 아니다. 따라서 소리를 귀에 와 닿는 부분이라고 한다면, 디자인은 눈에, 그리고 인터페이스는 손과 몸에 닿는 것. 결코 어느 한 요소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투박한 크렐의 앰프들은 ‘결격’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의 오디오 철학에 반박할 만한 명분은 별로 없다. 소리를 내건 내지 않건 간에 우리는 늘 집안에 기기들을 두고 바라보고 있는 것이니, 볼 때마다 디자인이 마음에 걸려서 찜찜하다면 아무리 좋은 소리를 내는 오디오 기기라도 오래도록 함께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소리는 기기간의 매칭이나 액세서리에 따라 많은 변수가 있지만, 디자인은 아무...
오디오 밸브라는 회사는 이상하게도 국내에 중국 메이커로 알려져 있다. 아마 대만에 일찍 상륙해 호평을 받은 것이 원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정확히 이야기하면 순수 독일 회사이고, 설계 및 제조 모두 독일에서 이뤄진다. 정확한 소재지는 칼레탈(Kalletal)이라는 인구 3만의 소도시다. 헬무트와 하이케 베커 부부가 주재자인데, 남편은 설계 및 제조 공정을 담당하고, 아내는 영업을 책임지는 전형적인 가내 수공업적인 메이커다. 직원이라야 실제 제조를 담당하는 직공 몇 명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얼마 전 수입사측에서 안전 인증을 위해 헬무트씨에게 설계도를 의뢰했을 때 깜짝 놀랐다고 한다. 변변한 설계도가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그럴 필요가 없는 게 모든 도면은 그의 머릿속에 컴퓨터처럼 정확하게 입력되어 있고, 직공들 역시 자기의 파트를 오랫동안 담당해와서...
10여 년전쯤으로 기억한다. 당시 모 호텔에서 개최된 하이 파이 쇼에 참석했다가, 참으로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분명 쾅쾅 방안을 가득 채우는 음향인데, 눈을 씻고 둘러봐도 대형기는 보이지 않았다. 설마 하며 창가를 바라보니 조그마한 북셀프 스피커 한 세트가 눈에 들어왔다. 당시 나오고 있던 음악은 듀크 엘링턴의 빅 밴드 넘버. 각종 브라스의 현란한 블로잉에 기세 좋게 두드려대는 드럼의 어택감으로 잠시 멍할 정도였는데, 설마 하며 스피커 앞에 손을 갖다 댄 순간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대체 이 조그마한 놈이 뭘 먹었길래 이렇게 힘이 좋단 말인가. 결국 앞좌석에 앉아 1시간 가량 감상에 임하고 말았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음에 놀랐고, 그 사이즈에 놀랐지만, 역시 제일 놀란 것은 저 완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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